매일신문

경주남산-인간의 소망 알고 있는듯

남산을 오른다. 산과 바위와 나무와 부처님이 어우러져 숨쉬는 아름다운 터가 된 남산이다. 빛 속에 웃음짓는 부처님들의 땅이다. 중생들에게 법계(法界)가 된 남산. 삼천대천 세계의 장엄이 나타난다.

석불은 차고 단단한 화강암에 새겨졌음에도 맑고 부드럽고 따뜻함의 결정이다. 고고학자 김원룡(金元龍)은 남산 석불의 공통된 특징을 '부처와 자연과의 신묘한 조화에서 오는 부드럽고 따스한친밀감'이라고 표현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난후 우리는 남산의 불상에서 부처를 만나고 신라인을만나며 신라의 미를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발굴된 남산의 입체석불은 모두 30여체. 미륵골 석불좌상을 비롯해 용장골 석불좌상, 삼릉골 석불좌상, 배리(拜里)삼존석불입상, 불곡 석불좌상등 5체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왕정골에서부터 장창골까지 남산 32골 모두가 입체석불의 불국영산의 정토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입체석불로 손꼽히는 토함산 석굴암의 본존불을 빚어낸 신라 석공들의 돌다루는솜씨가 이미 남산 곳곳에서 역사로 이뤄졌다. 어디 단순한 손재주만으로 이같은 걸작이 이뤄졌을까?

경주에서 남산 서쪽 기슭으로 5㎞남짓 들어가면 선방사터에 도달한다. 세월의 무게에 곧추서지못하고 조금씩 휘굽어 올라간 노송들이 병풍을 친 곳에 배리삼존불이 단아하게 서 있다. 기와를얹어놓은 나지막한 돌담안에 본존여래상을 중심으로 양쪽의 협시(脇侍)보살이 미소를 머금고 인간을 맞이한다. 넘어져있다 지난 23년 비로소 다시 세워진 석불들. 정강이부분에 굵은 금마저 간우협시 대세지보살은 그래도 왼손에 연꽃을 든채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인간들의 무정무심을탓하지 않는다. 사랑의 화신으로 불리는 관세음보살상인 좌협시보살은 왼손에 든 정병을 기울여이런 인간들에게 곧장 넘치게 자비를 부어줄 듯하다. 개살궂은 웃음기가 둥근 얼굴에 환한 본존여래상의 상호가 위엄마저 팽개치고 거룩한 자비로 더욱 그윽함에랴, 달리 정토가 있던가!9세기들어 나타난 마애불에 앞서 남산의 부처님은 입체불상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불상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7세기전반). 장창골 정상으로 추정되는 삼화령(三花嶺) 미륵삼존불과배리 삼존석불입상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있는 삼국시대 미륵삼존불은 속칭 애기부처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의상(倚像)인 본존불과 입상인 협시보살 모두 사등신으로 인형처럼 축소된 불상이다. 머리와 키의 비례가 4등신으로 갓난 아기의비례다. 8세기중엽 통일신라시대에 흔히 보이는 광배와 좌대를 가진 당당한 체구의 독립상들과대조를 이룬다. 1925년 본존불이 박물관으로 옮겨질때 민가에서 두 보살상이 발견돼 함께 옮겨졌다고 한다. 원래 장창고개마루에 본존불과 같이 있던 협시보살로 밝혀져 비로소 짝을 이뤄 삼존불이다. 향토사학자 윤경렬옹은 "양 옆에 보살들이 시립해 있음으로해서 본존의 얼굴은 더욱 밝고,애티나는 보살들도 본존곁에 있을때 신령스러운 느낌을 더한다"고 이 아름다운 삼존불에 대해얘기했다.

먼옛날 신라인들은 남산의 갖가지 석불에 소망을 담았다. 남산에 올라 예불하고 소원을 빌었다.서방정토의 무량수 부처님 앞에 우러러 두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풍우성상(風雨星霜) 천년의 간격을 뛰어넘어도 남산은 중생들이 소망을 안고 가는산이며 인간닮은 석불이 이들을 미소로 반겨주는 조화의 땅이다. 남산은 전체가 법신(法身)이요,남산 그 자체가 법계(法界)다. 남산에 들면 정토와 법계는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깨달으면 나타나는 속세의 변모가 곧 정토요 법계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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