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가 유미리(柳美里·28)씨는 요즈음 일본 문단에서 최고의 각광을 받고있다.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지난 16일 이후 일본 국내외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1백여건 넘게 들어오고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일정속에 작품집을 내자고 몰려든 출판사들과의 상담도 줄을잇고 있다.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주관하고 있는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사의 주선으로 만난 유씨는 가슴까지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옅은 수박색 원피스 차림, 화장 안한 얼굴에 그래서 조금은 청순해 보이는 모습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내 소설의 테마는 가족
"내 소설의 주된 테마는 가족입니다. 이번 수상작인 '가족 시네마'에도 나타나지만 개인은 가족의영향을, 가족은 사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가족은 개인의 실존과 국가와 사회라는 보편성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가족의 붕괴를 묘사하면 국가의 붕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서 문학적 의미를 찾다보면 민족으로도 연결될 수 있겠지요"
그는 아버지 유원효(柳原孝·65)씨와 양영희(梁永姬·51)씨의 2남2녀중 장녀로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태어났다. 경남 산청이 아버지의 고향이고 밀양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아버지는 파친코기계 수리기사였으나 도박에 빠지고 9세때 어머니도 가출하면서 가족들은 헤어져 살게 됐다. 요코하마시 일대 여러곳을 전전하며 많은 이사를 다니기도 하고 여러차례 자살미수 소동을 벌여 정학처분을 받았고 고교1학년때 결국 퇴학당해 그녀의 학력은 고교중퇴이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며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어 아버지에게 건네줬으나 아버지는 도장을 찍지 않은채 금고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우리집은 즐거운 식탁이 있는 단란한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보니 보통가족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족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받은 사람의근원적 불안을 통해 현대인의 충실한 삶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유씨는 어릴적 형제들의 이름을 지어준 외할아버지가 손기정씨와 함께 활약했고 전쟁으로 무산된도쿄올림픽 출전 가능성도 높았던 유명한 마라토너인 양인덕(梁仁德)씨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왜 일본에 왔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물론 부모들이 일본으로 오게된 경위도 알고 싶고본인이 어떻게 해서 일본에 있게 됐는지 뿌리를 찾으려 하고있다. 이를 소재로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공연을 계기로 한국을 두번 방문했지만 작년에는 어머니의 고향인 밀양에 가서 외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며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버지와 연락이 안돼 자신의 성인 유(柳)씨의 본관이 안동·하회(安東·河回)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위해 4-5월 방한
"부모의 고향인 경상도 산청과 밀양에 가면 언젠가 한번 온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고 자석에 끌리는 듯했습니다. 그곳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으며 취재를 위해 올해도 4월이나 5월께 한국을 다시 방문해 장기간 머물 예정입니다"
유씨는 재일교포 작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해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그렇다고일본인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자신의 문학에 반영하고 있다. 주위에 모두가 '이다. 있다'뿐인 풍요로운 일본사회에서 자신의 '없다'라는 요소는 중요하다고 했다.
결혼해서 가정을 만든다는 점에 대해 소설을 더욱 중요시 하기 때문에 한번 가정이 형성되면 이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므로 결혼은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소설쓰는 것을 애기를갖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가장 감동 받았을 때가 한국영화 '서편제'를 본 것인데 가족없이 표류하는 주인공이 눈이 먼뒤노래만 남았을때 처절한 감동을 주는 노래가 나왔다며 없는 것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유씨는 학력도 없고 가족도 갖지 않을 것이나 한국국적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입장은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유씨는 고교1년때 학교를 중퇴한 후 연극에 관심을 두고 16세 나이로 '도쿄 킷브라더즈'에 연기자로 입단했다. 18세때 단신으로 극단 '청춘오월당'을 결성했다.
도스토예프스키 흠모
이때 그녀는 엄청난 책을 읽었다. 체계적인 문학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그녀는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 책한권을 모두 옮겨적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모델로 한 이유는 악(惡)의 문제, 삶과 죽음, 신과 인간 등 근원적인 면에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곡작가로 시작해 소설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연출가의 해석과 연기자의 육체가 나의 희곡내용을 변질시키곤 했어요. 그래서 독자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희곡과 연극을 버리진 않겠습니다. 연기자 시절 연출가에게 체험을 얘기하자 내면에 드라마가 숨어 있다며 글쓰기를 권유받았습니다"라며 연극의 갈등 요소가 바로 자신의 성장기와 같으며 자신의 가족이 바로무대였다고 말했다.
유씨는 88년 처녀작인 희곡 '물속의 친구에게'를 발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92년 희곡 '물고기의 축제'로 신인 등용문으로 가장 권위있는 희곡상인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상을 최연소 수상하는 등 순풍에 돛단듯한 3년간의 작가활동기간중 10여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96년 소설 '풀하우스'로 이즈미교카(泉鏡花)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번엔 최고의 영예인 아쿠타가와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그늘에서 자란 식물'등으로 두번이나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다.한편 유씨의 작품중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95년 한국에 번역출판됐으나 독자들의 주목을받지 못했다. 이번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의 6-7개 출판사가 '풀하우스', 수상작인 '가족시네마'등의 번역 출판을 위해 저작권계약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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