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제투성이 금융관행 한보부도 사태

한보사태를 계기로 정치권 및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외압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금융계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거액의 부실채권이 발생한 배경에는 예외없이 권력층의 압력에 의한 은행대출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은행관계자들은 특히 한보철강의 대규모 제철소 건설사업의 경우 사업허가부터 은행대출의 거의전과정에 걸쳐 외부의 권력이 개입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최근 한보에 구제금융을 실시하라는 외압을 받은 모은행의 행장이 임원진과의 진지한 논의끝에 대출요청을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했지만 결국에는 은행들간의 협조융자 대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작년 9월 이래 총 5천2백억원의 구제금융을 실시한 제일, 조흥, 외환, 산업은행 중에서 일부은행의 경우는 본점 간부들이 일제히 한보에 더 이상 금융을 제공하면 안된다는 집단의견을 행장에게 전달했으나 외압에 밀려 묵살됐다.

시중은행들이 한보의 부도사태를 충분히 예견하고 더 이상 물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무력했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협조융자 대열에 참여한 은행들에게 돌아온 것은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 뿐으로 은행경영마저 위태로워지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대출 뿐 아니라 부도처리를 은행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청산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있다.

이번 한보 부도도 지난 18일부터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백억원이 넘게 매일 발생했는 데도 은행들이 이같은 사실을 금융결제원에 통보하지 않은 채 부둥켜안고 있었다.

이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한보의 부도처리를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권력층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부도사실을 결제원에 통보해 한보가 무너지면 나중에 상부로부터 호된 질책 및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서 은행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부도사실을 숨기고 있었다.한보부도처리 방침이 처음 알려진 것도 해당은행이나 은행거래 정지처분을 내리는 금융결제원이아닌 청와대인 데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금융계 인사들은 한보부도 케이스가 아직도 금융시장의 원리에 따라 부도를 제대로 처리하는 관행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금융계의 현실을 웅변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개탄했다.배경이 없는 중소기업은 계좌에 돈이 없으면 그대로 부도처리되지만 정치권력과 결탁한 대형 부실기업일수록 배경을 동원해 부도처리가 어렵다는 것이 우리 금융기관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외압의 결과로 수조원대의 부실채권이 발생한 경우 외압을 행사한 권력층을제재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금융기관에만 덮어씌우는 과거의 관행이 차제에 불식되어야 한다고강조했다.

또 금융계에 대한 외압이 사라지고 명실상부한 자율성이 주어져야 금융개혁도 가능하고 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금융기관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수십년간 관치금융에 익숙해진 금융계 종사자들도 스스로 외압을 거부하려는 의지를갖추고 책임경영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게 한보사태가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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