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보고-해프닝으로 끝난 납치사건

"모두 회사가 부도난 탓이지요"

24일밤 대구 서부경찰서 형사계. 어엿한 섬유업체 사장인 30대 남자 2명이 오인(誤認) 납치사건피해자와 용의자로 나란히 조사를 받고 있었다.

대구 염색공단내 (주) ㄱ화섬 등 섬유업체 3개 회사를 경영하던 김서영씨(38·가명)는 지난 10일31억여원을 부도냈다. 지난해말까지 섬유기계를 바꾸며10억원을 투입했으나 금융기관들이 "섬유기계는 담보능력이 없다"며 대출을 거부, 부도가 났다는 것이다.

이날부터 김씨는 채권자들을 피해 다니다 경남 창원 여동생(37)집에 숨어지내는 처량한 신세가됐다.

하지만 22일오후 부인 유씨(35)의 뒤를 밟은 채권자 이모씨(37)일행 3명에게 김씨는 덜미를 잡혔다. 이씨는 날염가공을 해주고 가공료로 8천만원짜리 약속어음을 받았으나 부도나 김씨의 행방을쫓고 있었던 것.

그러나 두사람은 뜻밖의 타협(?)을 보게 됐다. 김씨는 다른 채권자들 몰래 부인 유씨로부터 돈을받아 이씨의 빚 일부를 갚고 이씨는 김씨에게 도피자금과장소를 제공키로 한 것.이씨와 김씨는 9차례에 걸쳐 부인 유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의 친인척계좌를 알려주고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이 꼬였다. 유씨가 남편이 납치된 것으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 경찰은 '피랍자 생명 보호'를 위해 언론 보도 자제를 요청해 가며 온통 비상이 걸렸다. 통화 내용을추적해 발신지를 찾아 내느라 긴장해야 하기도 했다.

두사람으로부터 사건내용을 들은 형사계 김종오주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도가 잦다보니 별 정신나간 짓거리들이 다 생기는 군요. 헛고생을 했지만 안타깝기도 하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