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는 중국의 현대사를 기본으로 삼고 그속에서의 황제의 삶을 묘사하고 있으나, 일본의 침략이나 사회주의혁명의 원인과 결과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직 마지막 황제의삶을 움직이는 배경적 사건으로서만 역사가 설정되고 있다. 객과적인 역사가 아니라 주관적인 슬픔과 영국인 가정교사의 눈에 비친 불쌍한 어린 감금자의 기구한 팔자와 그 슬픔만을 강조하는경향까지 있다. 역사는 그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식이다. 우리 식의 야사식 왕조애사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까지 든다.
1908년, 부의는 3세의 나이로, 폭군인 서태후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아 청제국의 제12대 황제가 되나 4년뒤인 1912년, 신해혁명에 의해 청조가 망하고부터는 자금성에 갇혀 외부와 단절되는 유폐의 신세가 되어 부패한 환관과 여관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19세가 된 1924년, 군사쿠데타가 터지자 그곳을 쫓겨나 천진에서 놈팽이가 된다.
그후 25세가 된 1930년에는 권력에 대한 미련과 일본군의 유혹으로 일본이 세우고자 한 만주괴뢰국건설에 협조하고 2년뒤에는 그 황제가 된다. 부의는 권력에 탐닉하나 그 권력의 실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그 부인은 아편에 중독되고 마침내 황제의 운전사 아기를 갖게된다. 그런 상황에서 중일전쟁과 제2차대전이 발발한다. 1945년,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로 만주국은 망하고부의는 소련의 포로가 된다. 1950년, 시베리아에서 만주로 전범자를 이송하는 열차에 실려와 재교육을 받고서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 보게 된다. 10년뒤에 황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다시 태어나 문화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북경식물원의 정원사로 자금성을 방문한다.이 영화의 문제는 서양인의 중국관이다. 학문적으로 그것은 서양이 중국에 초래한 충격, 압력, 작용, 영향 등이 중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낳았는가 하는 관점이다. 한국사의 서술시에도 흔히 원용되는 전통과 근대성이라는 관점도 그 변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근대성이라는 것의 기준이 바로서구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양문명에 대한 개몽성이 그 내용을 형성한다. 예컨대 기독교의 전파나 그것에 의한 신문화의 수용 등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비판으로서 근대성이라고하는 것이 사실은 제국주의침략의 수단이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숙고해야 한다. 그 경우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 기준이 경제발전이라고 하는 서구적 관점이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점이다.따라서 문제는 중국 내부의 고유한 역사발전법칙을 연구하는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예컨대 우리는 우리 근대사의 출발을 서양에 의한 개국으로 잡고있다. 중국의 경우 그것은 아편전쟁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나 그 역사의 전체에서 본다면 하나의 불행한 우연적 사건에 불과했다. 결국 우리 역사의 현대는 그것보다 훨씬 뒤인 민주국가의 수립에서 잡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라고 하는 것이 현재를 미화하기 위하여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서양식의 발전사관의차원에서 낙관적으로 수식되는 점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아야 함을 가르쳐주는 반면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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