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보 부도사태-풀어야 할 의문들

"제철소 부지 국토계획 좌지우지"

경제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 넣은 한보그룹 부도사태는 검찰수사가 진행되면서 갖가지 비리의혹들이 차례차례 불거지고 있다.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대형 비리사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계기로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정리한다.

▲당진제철소 부지조성을 위한 공유수면매립=당진제철소는 지난 89년 부지조성을 위한 공유수면매립단계에서부터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공유수면매립의 주무부처인 구(舊)건설부의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에는 현재 당진제철소가들어선 충남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일대를 매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보철강은 88년 9월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 변경을 구건설부에 요청했으며 구건설부는 이를 바탕으로고대리 일대 77만평에 대한 매립을 허용하는 기본계획 변경안을 작성, 일사천리로 각종 절차를진행시켜 89년6월 경제장관회의에 올려 이를 확정, 고시했다.

구건설부가 당시 연구기관 용역은 물론 충분한 타당성 검토도 없이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처됐었다.

▲(주)한보 수주과정에서의 로비의혹=수서택지 특혜공급 사건으로 법정관리가 신청돼 파산직전까지 몰렸던 (주)한보가 지난해 건설업계 도급순위 7위로 급부상, 로비를 통한 대형 공공 공사 수주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주)한보는 지난 92년 도급한도액 3백86억원에서 96년에는 1조2천2백20억원으로 31배나 늘어나건설업계 도급순위가 92년의 1백8위에서 4년만인 96년에는 7위로 뛰어올랐다. 평은~영주간 도로공사와 보은~내북간 도로공사, 중앙고속도로 원주-홍천간 공사는 동아건설, 임광토건, 현대건설로시공사가 거의 결정난 단계에서 (주)한보가 치고 들어와 공사를 가로채간 것으로 업계에는 알려져 있다.

▲용융환원(코렉스)설비 도입=한보가 세계적으로 상업성이나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코렉스설비를 들여온 데 대해 의혹이 일고 있다.

한보는 이 설비를 도입할 때 기술도입 규정에 따라 재경원장관에게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이를 위임받은 통산부장관이 기술을 제공하는 외국기업이 지급받는 로열티가 조세감면대상에 해당한다고확인해 줬다.

한보의 코렉스시설 도입에 대한 조세감면이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통산부나 금융권과 사전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있다.

▲한보 부도직전의 자금지원 협조요청=통산부가 한보철강의 부도 몇시간 전에도 소요자금 지원이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도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산부는 한보부도 4시간 전인 지난 23일 오후에"한보그룹이 지난 20일 제철소건설에 추가로 소요되는 9천3백3억원중 자체 조달로 충당할 수 없는 4천4백26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산업정책 측면에서 한보철강이 완공후 정상 가동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돼 자금지원이가능하도록 협조해 달라는 입장을 재정경제원에 밝혔다"고 했었다. 채권은행들이 은행관리를 검토하고 있고 부도직전인 상태에서 자금지원을 요청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원건설 인수문제=한보그룹은 지난 95년 부도가 난 유원건설의 인수문제를 놓고 재계가 물밑경합을 벌이고 있을 때 강력한 인수후보 업체였던 대성산업 등을 제치고 전격적으로 유원건설을인수했다.

당시 대성산업이 인수의사를 적극 내비치며, 강력한 인수업체로 부상했으나 제일은행의 이철수(李喆洙) 행장은 95년 6월 "한보그룹을 인수사로 최종 결정했다"고 전격 발표했다.이처럼 유원건설이 한보그룹으로 넘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한보가 유원을 인수할 만한돈이 어디서 났을까 하는 의문이 재계에서 제기됐다.

지난 91년 수서사건으로 정태수(鄭泰守) 총회장(당시 회장)이 구속되는 등 한때 그룹해체 위기에까지 몰린 기억이 그때까지도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진제철소 투자비=당진제철소 투자비는 당초 계획으로는 2조7천억원이었으나 5조7천억원으로크게 증가했다.

한보는 이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투자가 이뤄지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특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매립지역이 연약지반이라 보강토목공사비가 추가되고 중도에 수차례의 설계변경과 환율변동,금융비용이 누적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원래 투자계획과 실제규모가 3조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우며 일각에서 한보가 대출을 쉽게 받기 위해 은행제출용 사업계획서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 과다대출 및 외압=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한보철강에 1조8백억원의 대출을 실시, 은행 납입자본(8천2백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빚을 한 기업에 몰아주었다.

또한 제일은행이 대출해준 총규모가 27조원이기 때문에 총여신의 4%%가 한보에 집중됐다.제일은행 등 4개 주요채권은행은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4천억원의 협조융자를실시키로 하고 1천억원씩 나눠 일사불란하게 지원했다. 이때는 한보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소문이나돌면서 2금융권에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을 때다. 따라서 은행들도 자연히 추가대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데도 거꾸로 대출확대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재경원, 은감원 등 관계와 정치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은감원의 방조태도=은행감독원은 제일은행에 대한 작년 10월의 정기검사결과 9월말까지 위규대출이 없었으며, 다만 한보에 대한 대출이 지나치게 많아 검사후 구두강평에서 특정기업에 대출이많으면 사후관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한마디 코멘트한 것이 전부라고 대출에 문제가없음을 강조했다.

또 채권은행들은 '동일인 여신한도'라는 은행법상의 규제를 피해 신탁업법의 적용을 받는 신탁대출을 통해 총대출의 50%%에 육박하는 과다한 편법대출을 자행했는 데도 이는 재경원의 감독사항이라며 은행감독을 포기한 부분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금융결제원이22일 한보철강에 대한 최종부도처리를 하려하자 이를 미루도록 결제원에 요청해 결국 하루 늦춰진 부분도 해명돼야 할 부분이다.

▲지원중단 급선회 경위=4개 주요 채권은행단은 작년말까지만 해도 4천억원의 협조융자를 실시했다. 또 올들어서도 연초에 1천2백억원을 긴급 지원해 당진제철소완공때까지 부족자금을 지원할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채권은행들은 한보철강이 발행한 수백억원대의 어음을 지난 18일부터 부도처리하면서도 이를 금융결제원에 제때 알리지 않아 23일에야 부도가 발생했다. 마지막거액대출이 이뤄진 8일 이후 부도가 실제로 발생한 날까지 15일동안에 은행권의 한보에 대한 입장이 급선회한 셈이다. 또 채권은행단이 자율적으로 부도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상부의 지침을 받고나서 부도처리를 한 것으로 알려져 부도처리 과정을 둘러싼 의혹도 가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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