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대출과정을 보면 정치권 외압이나 특혜의혹뿐 아니라 은행들이 한보에 어쩔수 없이 질질 끌려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당진공장 건설 초기에 은행들은 외화대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너도 나도 자금지원에 경쟁적으로달려들었다. 당시만 해도 철강경기 호조가 예상되고 투자금액도 은행들이 감당할만한 여력이 있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그러다 한보측이 여러차례 사업계획을 수정하면서 투자비가 당초 예상액의 두배를 넘는 5조여원에 이르면서 은행들은 발을 빼지 못하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추가대출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은행들이 한보철강에 발목을 잡힌 큰 이유중 하나는 자금지원을 후취담보 취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취담보란 먼저 기자재 수입 등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나중 공장이 완공되면공장건물과 시설을 담보로 잡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건물이 들어설 땅만 담보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금지원 규모에 비해 담보가 적을 수밖에 없다.
채권은행들은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한 후에야 후취담보취득을 전제로 한 공사가 완공되지 않아 담보취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여서 부득이 완공때까지 계속 지원을하게됐다고 실토했다.결국 이러한 후취담보 관행에 정치권의 외압 등이 가세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은행권은 사상최대의 부실여신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버리게 됐다.
물론 이번 한보부도사태는 애초부터 금융기관들이 당진공장 건설에 드는 자금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조그만 기업들에 대출해 줄 때는 사업성과 소요자금을 면밀히 검토하면서도 한보철강에 대해서는담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요구할 때마다 무턱대고 자금 지원을 해줬다는 얘기다.당진공장의 건설비용은 지난 94년 7월 2조2천8백63억원에서 작년 12월 현재 5조7천2백65억원으로3조원이상이나 증가했다.
당진공장 투자계획 변경내용을 보면 95년 4월 열연 및 제선설비 추가(1조4천3백억원)로 소요자금은 3조7천1백63억원으로 증가했고 95년 10월 1단계 시설이 완공된시점에선 소봉 및 열연 공사비(4천2백69억원)가 추가된 4조1천4백32억원에 달했다.
이어 96년 3월에는 매립지 지반보강공사, 시설공사비 추가, 건설자금이자, 등록세 및 취득세 등(5천8백96억원)때문에 4조7천3백28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작년 12월에는 지반보강공사, 시설공사비 증가, 건설자금이자, 인건비 및 자재비 상승 등(9천9백37억원)으로 총 소요자금은 5조7천2백65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생산능력은 94년 5백만t에서 95년 6백만t으로 바뀐후 변동이 없었다.생산능력은 변함이없는데 매년 공사비가 추가되고 두차례에 걸쳐 지반보강공사를할 만큼 한보의 건설비용 산정엔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건설과정에 예상치 못한 투자가 생겼다는 한보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추가투자비 가운데 상당부분이 다른 곳에 쓰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또 채권은행들은 한보의 주먹구구식 투자계획에 장단을 맞춰 춤추듯 마구 자금을 쏟아부었다.신광식제일은행장은 이에 대해 "처음 외화 시설을 도입할 때 각종 경제전망은 철강산업이 유망한것으로 분석하고 수급상황으로 봐도 당진공장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해명했다.대출을 결정할 당시의 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그이후 2년동안 은행들이 2조원이상 추가로 대출을늘린 것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제일은행의 경우 한보철강에 대한 순여신(대출금+지급보증)은 93년말 2백47억원에 불과했으나 94년말 5천2백45억원, 95년말 8천5백28억원, 96년말 1조5백44억원으로 급증했다.93년말까지만해도 서울은행의 순여신이 2천87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나 94년부터제일은행이 외화대출을 크게 늘려 주거래은행이 됐다.
은행법상 동일인 대출한도는 은행 자기자본의 15%%이나 은행감독원장의 승인을 받으면 20%%까지 가능하다. 제일은행은 은감원장으로부터 초과 승인을 받아 한차례 15%%를 넘겨 대출해줬다즉시 상환받기도 했다. 이때문에 총체적인 은행감독을 맡고있는 은감원이 오히려 한보대출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의 순여신도 93년말 6백54억원에서 94년말 2천7백25억원, 95년말 4천5백51억원, 96년말 8천34억원으로 늘어났다.
채권은행들은 담보도 제대로 없으면서 거액의 대출이 이뤄진데 대해 외압이 없었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이번 한보부도 사태는 한보의 주먹구구식 사업계획과 이에 놀아난 금융권의 무모한 대출, 정치권외압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예견된 합작품이라는 것이 금융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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