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이테크 문화유산-신라금관

우리 선조들은 우수한 금속공예술을 바탕으로 1천5백년전에 세계 최고걸작의 황금미술을 빚어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금관은 뛰어난 조형미와 색감, 화려한 장식으로 세계인이 감탄하는 황금문화유산이다.

찰랑찰랑 청아하고 신비스런 소리를 내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은 신라의 금관은 걸작중의 걸작. 산들바람이 일거나 왕관을 쓴 이가 머리를 움직이기라도 할 때면 금잎이 일렁이면서 금물결이 인다.

동국대 문명대교수는 "단순한 쇠소리에 그치는 불협화음이 아니라 금잎이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는 교향악을 듣는 듯 편안함을 불러일으킨다"며 종교적 신비마저 느낀다는 것.금관에다 생명력을 가미한 것은 세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삼국시대 공인들만의 뛰어난 감각이다. 좌우대칭의 정교함과 화려하면서도 은은함을 잃지않은 조형감각을 살린 것이다.'금과 은이 많고 눈이 부시는 나라'.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일컫던 말이다.

신라의 순금공예는 왕관, 장신구에 머물지 않고 식기까지 만들어 쓸 정도로 뛰어났고 보편화됐기때문이다.

이것은 또 뛰어난 도금법과 제련기술의 축적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동국대 이난영교수는 "신라의 금제유물은 주금(鑄金)기법에서 판금가공, 선조(線彫), 투조(透彫)등 각종의 조금(彫金)기법을 이용한 타출기법, 도금에 이르기까지 금을 이용한 모든 가공기법이적용되고 있다"고 높은 기술성을 평가했다.

땜이 안되는 금이지만 미세한 금실로 3백여개의 금잎을 매달고 수십여개의 곡옥을 조화롭게 매어달면서도 금판을 종이 사이에 끼워 늘려 그 두께가 1백분의 1mm에서 1천분의 1 mm나 되는 얇은 금박을 만들줄 알았다.

가장 널리 쓰인 기법중의 하나가 어자문(魚子文)기법. 페르시아 등 서역의 기법이 중국을 거쳐 신라에 들어왔으나 신라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발전한 세공기법이다. 불상의 광배, 사리구, 생활용구,장식용 금구 등에 두루 나타난다.

어자문기법은 방울정 또는 누깔정이라 부르는 어자문용 공구로 세공하는 것이다. 강철로 된 어자문용 끌을 사용하여 금속표면을 두드리면 작은 원문(圓文)이 찍히는데 이런 무늬들을 촘촘하게모으면 고기알처럼 보인다하여 어자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양을 내는 또다른 방식인 모조(毛彫), 축조(蹴彫), 점선조(點線彫) 등 선조(線彫)기법에 의한 장식기법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점선조기법은 끝이 뾰족한 운풍정으로 점을 찍으면서 선으로 이어서 나타낸다. 이 방법은 윤곽을돌리거나 무늬와 명문을 쓰는데 필요하다.

이 기법도 점선으로 새기되 선이 이어지면 점선조로 송곳자국 하나하나가 따로 도드라져 보일때는 침석타(針石打)기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라 천마총이나 금관총, 서봉총 등 고분출토의 금관은 출자형이나 사슴뿔형 솟을 장식을 모두침석타기법으로 새겼다.

얇게 만든 금판으로 입식(솟을 장식)을 모양대로 잘라내고 그 표면에 간결한 침석타기법으로 새겨 금잎을 매달고 곡옥으로 장식한 것이다.

이밖에도 투조기법(透彫技法)중 외투(外透)는 원하는 문양을 두고 다른 바탕부분을 투각하는 것이며 문양투(文樣透)는 바탕을 남겨두고 무늬부분을 투각하는 것.

금관 요패 불상의 광배 사리구 등은 외투로 요대 등은 문양투로 한 것이다.

모조기법은 끝이 세모지고 뾰족한 촛정 또는 삼각정, 모정이라 불리는 끌로 가느다란 선을 그어무늬를 만드는 방법. 이기법에 의한 유물은 삼국시대에 고루 보이며 특히 사리장엄구에 많다.축조기법은 끝이 약간 편평한 공군정으로 직각에 가까울 만큼 가볍게 각을 세우면서 차듯이 두드린다 하여 축조(蹴彫)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고령 지산동 32호분의 금동관, 황룡사지에서 출토된금동사리내함 등이 이 방법이 쓰인 유물.

고려청자로 대표되는 상감기법(象嵌技法)도 삼국시대에 이미 사용되었다. 이 기법은 금속의 표면에 다른 금속을 박아넣는(감입) 것을 말한다. 금실이나 금편(金片)을 박아 글자나 무늬를 나타내는 화려한 기법이다. 무늬가 섬세한 경우 주조를 한다음 끌로 홈을 파서 금실을 감입한다.대표적인 유물로는 일본 석산신궁에 보관중인 백제의 칠지도(七支刀)가 있다. 또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환두대도, 창녕 교동 11호분 원두대도가 상감기법으로 제작됐다.신라시대의 금관은 대륜(帶輪-둥근테)위에 5개의 가지를 붙이는 것이 전형적 양식이다.서봉총금관은(사진 참조) 둥근테위에 5개의 가지를 세웠고 테에는 파상문(波狀文)을 찍었다. 상중하 3줄로 도드라진 원좌(圓座)를 만들어 그 중앙에 원형 금잎과 비취 곡옥도 달았다.둥근테에 못으로 고정시켜 세운 5개의 가지중 중앙과 좌우의 3가지는 출(出)자형을 3번연결했는데 금판을 오려서 만든 가지 주위에는 2줄씩 점선을 찍어 얇은 금판이 휘지않고 바로 서 있게 하였다.

내모형(內帽形)은 두 가닥의 금판대를 전후.좌우에서 대륜에 연결하여 반원을 그리면서 약 21cm높이에서 열십자로 교차연결시키고 그 위에 3가닥이 난 나뭇가지를 붙였다. 가지 끝마다 새를 한마리씩 붙인 다음 새까지도 금잎을 달았다.

길게 내려뜨린 귀걸이장식인 수식(드림장식)은 위로 솟은 입식과 대조를 이루면서 왕의 권위를잘 나타내고 있다. 입식(솟을 장식)의 테두리에는 점열을 정교하게 새겼고 관테(관대)에는 당초무늬를 점열로 찍어 아름답게 만들었다.

귀걸이도 신라인의 화려한 세공기술이 표출된 유물. 경주 노서동 215호 고분과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발굴된 금제태환귀걸이는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부부총의 금제귀걸이는 태환과 타원형 중간고리 밑에 수식이 달린 전형적 신라귀걸이다.〈李春洙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