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黃長燁) 북한노동당비서의 전격적인 망명은 가뜩이나 복잡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앞날을한층 '혼미(昏迷)'속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북노동당내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인 그의 망명은 북한의 붕괴위기를 웅변으로 대변하는 것이어서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기때문이다.
당장은 주중 한국대사관에 머무르고있는 황비서 일행의 한국망명 성사를 놓고 중국정부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을 상대로 남북한 당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칠 것이 분명하다.특히 북한은 이번 사건을 '남조선의 납치극'으로 규정, 대남협박의 강도를 높이고 체제수호를 위한 대내 무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따라 지난해 연말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북한당국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을 계기로 서서히 피어오르던 '해빙'기류는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황비서 일행이 성공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향후 질서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북한이 본격적인 붕괴국면에 돌입했음을 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심각한 식량난을 견디지 못해 평범한 민초들이 사선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왔다면 이제는 권력 상층부마저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섭대표단의 수석대표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을 하지 않는 나라가 앞으로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식량위기 해결문제를 놓고 권력 핵심부에서 강(强)·온파(穩派)간의 노선싸움이 치열한 것은 물론, 이를 통제할 지도력의 부재(不在)를 입증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북한을 방문, 황비서를 만나본 국내외 인사들이 저마다 "그렇게 해박하고 합리적인 사람은 처음보았다"고 칭찬했던 점에 비춰볼때 그는 북한권력 실세그룹에서 '온건 합리주의'를 대표한다고볼수 있다
전반적인 흐름으로 볼때 앞으로 북한 권부(權府)내에서는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욱커지고 온건파의 실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그런 가운데 북한의 내부붕괴는 한층 가속화될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김일성 사망 3년이 지나는 오는 7월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국가주석취임도 그다지 순탄치 않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같다.
두번째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등 한반도 관련국들이 앞으로 이같은 북한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기존의 정책을 불가피하게 수정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있다.
사정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누구보다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클린턴 미행정부가과연 지금까지의 '연착륙(軟着陸)'(Soft Landing) 정책을 견지해 나가기가 어렵지 않겠느냐고 일부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과는 달리,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북한이 자포자기식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점에서 오히려 미국의 연착륙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클린턴 미대통령이 작년 4월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4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기조를 천명한이래, 한미 양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그동안 북한의 4자회담 참석을 적극 유도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당기간그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정세는 그만큼 유동적이 될 것으로보인다.
더욱이 강경파가 주도하는 북한이 체제수호를 위해 더욱 더 강하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호전적성향을 구체화하려고 할 경우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안보위기 국면으로 직행할 가능성도 완전히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당분간 대내 무마용으로 대남 강경노선을 취하겠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식량위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로부터 쌀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대내 소화' 기간이 지나면 강경노선을 누그러 뜨리고 비교적 현실적인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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