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일 북한의 황장엽(黃長燁) 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해 옴에 따라황비서를 서울로 데려오기 위해 즉각 외교협의에 나서는등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정부는 이날 황비서의 망명을 발표하기 앞서 오후 2시 권오기(權五琦) 통일부총리 주재로 통일안보조정회의를 열어 △중국과의 망명절차 협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을 통한 교섭 △북한의 역공세등 북한정세및 동향 파악등 다각적인 대책을 관계기관별로 논의했다.유종하(柳宗夏) 외무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외무장관회담 참석계획을 취소했으며 미국을 방문중인 반기문(潘基文) 청와대외교안보수석도 일정을 하루 앞당겨13일 귀국키로 했다.
○…한보정국으로 허탈해 하던 청와대는 이날 북한노동당비서라는 '대어(大魚)'가 한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했다는 정부발표가 있자 외교안보수석실을 중심으로 대책을 협의하며 모처럼만에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黃비서의 망명사실과 경위등 예상치 못한 '낭보(朗報)'를 관계기관으로부터소상히 보고받고 정부발표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는 후문.
김대통령은 이날오후 4시 청와대에서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로부터 주례보고를 받은 자리에서도황비서의 한국망명요청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확립한 사람이 망명했다는 사실로만도 그 의미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붕괴조짐을 예고해 주는 사건"이라고 풀이했다.이 고위관계자는 "북한노동당대표단이 오늘오후 4시에 평양으로가는 열차를 타고 가려다 황비서일행의 한국망명요청 사실을 알고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마찰없이 가급적빠른 시일내 황비서를 서울로 데려오기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비서의 망명요청 소식이 전해지자 통일원은 북한체제를 이끄는 중심축인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장본인이 망명한 것은 북한체제의 붕괴가능성을 다시한번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내다봤다.권통일부총리는 이날 오후 곧바로 서울시내 모처에서 통일안보조정회의를 소집해 황비서의 신병처리절차 및 대중국 외교협의대책,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했다.이날 회의는 또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정부대변인인 공보처장관이 망명사건발표이전에 각언론사 보도·편집국장에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키로 방침을 정하고 이를 공보처에 통보.통일원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을대로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이같은 사건이 터져나와 당분간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충격은 우리보다 훨씬 더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비서의 망명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외무부는 비상체제로 전환한 외교정책실과 아·태국을주축으로 북경주재 한국대사관과 유기적인 연락을 유지하는등 기민하게 대처하는 모습.유외무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SEM 외무장관회담에 참석하려던 당초 일정을 취소하고 시내 모처에서 열린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석했다.
유장관은 이어 외무부로 돌아와 곧바로 소병용(蘇秉用)외정실장과 유광석(柳光錫) 아태국장등 주요 실무간부들을 긴급 소집, 황비서의 신병처리절차와 중국정부와의 협상대책을 집중 숙의하는등발빠른 움직임.
외무부는 북한내 '주체사상의 대부격'인 황비서의 망명사실을 중시,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해 중국정부와의 협상에 나서는 한편 이번 사건이 몰고올 한·중, 중·북관계의 파장에 대해서도 면밀한분석작업을 병행.
한 당국자는 "일반적인 망명사건의 경우 본인의 자유의사를 확인해 원하는 망명지로 인도하는 게관례지만 이번 사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며 "여하튼 중국정부의 최종판단이 황비서 망명의주요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또 예상되는 북한의 방해공작등 '저지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국등 우방의 역할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미국의 '원거리지원'을 유도하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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