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후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지난해에 이어 이달 초 다시 북한을 방문했던 해외동포 서대방씨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북한 실상을 정리해 본다.
피여도 피여도 꽃은 없고 맺어도 맺어도 열매 없으니
강산은 찢끼여 원한에 사무쳤네 바다여 놓하라 폭풍아 몰아쳐라
수난을 불사루고 새봄을 맞이하자
북한 한대학생의 시를 통해 북한이 처한 상황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절규를 느낄 수 있다.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의 의미
황장엽은 민족주의자이면서 북한의 실정에 맞는 주체사상을 철학적으로 완성한 사람이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에는 희망을 갖고 북한에 주체사상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의 망명 결심은 김정일체제에선 주체사상이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주민들이 굶어죽고 권력자들은 주체사상의 망령을 갖고 주민들을 끊임없이 통제하는 상황에서 황씨는 오로지 주민들을 살려야 한다는마음만으로 망명을 결심한 것 같다. 칠순이 넘은 노인이 남은 인생을 헐벗고 굶주리는 인민들을위해 바치겠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황장엽비서가 망명하도록 도와야겠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 황씨의 한국망명을 통해 정부는 대북한 정책을 새롭게 재고해야 한다. 주민들이 굶어죽어가는 마당에 명분이나 김정일체제에 대한 정통성 시비는 의미가 없다.
황씨는 한국에 오더라도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북한 주민 돕기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현재중국에 머물고 있는 황씨가 제3국으로 망명을 희망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황씨는 반드시 한국으로 망명한다. 한국 정부가 북한 쌀 지원을 위해 황씨를 밀사로 북한에 파견한다면 그는 목숨을 걸고 다시 북한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심지가 곧을 뿐 아니라민족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북한 식량난은 어디까지 왔나
현재 평양에는 2천여명의 인부들이 동원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장에 들렀을 때한 대학병원 의사가 "날 이 공사장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한국 실정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북한은 극소수의 당간부, 사회안전원, 보위부원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배를 곯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역의 인민위원장들도 식량배급이 안돼 굶주리고있다.
1년 전부터 북한의 지식인, 대학교수, 연구원, 교사들은 월급 뿐 아니라 배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양곡이 배급되지 않아 대학 기숙사도 문을 닫은 상태다. 배고픔 때문에 학교 수업이 이뤄지지않는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다. 김책대학, 김일성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조기 방학을 했다. 언제 공부를 시작할지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젊은 당 간부들을 만났을때 내가 먼저 "서울에는 음식 찌꺼기 처리가 골칫거리"라고 말하자 한젊은 간부는 "그게 사실입니까"라고 말하면서 날 의심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4백g 씩 음식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이자 이들은 벌컥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과 장군님이 주신 1백g의 식량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데 남조선 놈들이 우리보다 4배나 많은 식량을 쓰레기로 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차라리 굶어죽었으면 죽었지 제 민족 헐벗고 굶주리는 것 뻔히 보면서 음식을 그렇게 버리는 놈들과는 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1년에 2천8백억여원의 외국산 위스키를 수입한다고 하자 "민족을 저버리는 놈"이라며 하나같이목소리를 높였다.
8살바기 머슴애가 진흙을 먹고 있길래 "왜 흙을 주어먹니"라고 했더니 그 꼬마 하는 말이 "아저씨 이건 먹는 흙이에요"라고 했다. 결국 그 꼬마는 항문이 막혀 수술도중 혈관 파열로 죽음을 맞게 됐다. 이런 어린이들이 북한 도처에 널려 있다. 대책이 시급하다.
방문 기간 중 함경북도의 한 암시장에서 60대 노파가 옥수수 빵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쏜살같이달려온 10대 소년이 그 빵을 낚아채 도망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소년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빵을 뺏어 도망가는 아이를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는 노파의 허탈해 하던 표정을 잊을수 없다.
요즘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지역을 떠나는 것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40리 50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
▨김정일 체제 어느 상태인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동안 북한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 왔다. 인민들도수령님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 인민의 텅빈 마음을 김정일이 채울 수 없다. 당 기관지에서 김정일을 아무리숭배하자고 해도 이를 믿을 주민들은 없다. 김일성은 최소한 독립운동에 참가하고 정권을 창출해신격화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김정일은 차원이 다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늦어지는 것도 궁극적으론 인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종합대학 본관 2층에 김정일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김정일이 5세때부터 살아왔던 모든것을 신격화해 놓았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박물관을 안내하던 사람이 "이것 다 거짓말이라요. 장군님은 김일성대학에 제대로 다니지 않았어요"라며 김정일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함경북도 중국 국경에 있는 한 영관급 장교는 "군에 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최고 인민사령관이될 수 있느냐"면서 "누구도 김정일장군을 수령님과 같이 생각하지 않습네다"고 말했다.이같은 상황에서 김정일은 아무리 인민들을 설득하려 해도 북한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북한 전역에 '수령님이 다시 부활했다'는 간판을 설치하는 것을 봐도 김정일체제의 취약함을알 수 있다. 김일성의 망령이 현재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았던 것은 큰 잘못이다. 특히 자기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하려고했던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북한 권력 내부에는 구데타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 구조에서는 누구도 힘을 모아 일을 도모할 분위기가 안된다.
▨ 북한 동포의 대남관
북한이 남한에서 보낸 쌀을 군량미로 쓴다고 호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남한에서 보낸 쌀 일부가군인들에게 간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주민들 뿐 아니라 군인들도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다. 피골이 상접한 귀순자들이 보지 않았는가. 군대 내부에서도 쌀 색깔만 보고 어디에서 온 쌀인지 다 안다.
평양 인근의 한 군부사령관이 "우리 병사들에게 사상교육 정치교육 다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남조선에 대한 증오심이 동경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처음 남한 쌀이 북한 청진항으로 갔을 때 쌀을 나르던 한 주민이 "청진 항구에 이름없는 백포대가 들어오긴 처음입네다. 우리가 이 쌀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게 아닙니다"고 증언했다.북한 주민들은 일본이 태국에서 공업용 쌀 30만t을 갖다 준 것과 우리가 15만t 식용쌀을 갖다 준것을 구분하고 있다.
남한 쌀로 밥을 지어먹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남한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군량미 사용 운운하는 것은 민족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이 보내주면 보내줄수록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양이 많다고 생각해야 한다.한 고위 당간부는 "남조선에 가서 공화국 사람들을 이웃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가족이라고 교육을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북한 주민들은 남한에 대해 호의적이다. 오히려 미국에 대한증오심이 대단할 뿐이다.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85%%는 55세 미만이다. 한국 사람들이 6·25전쟁과 아무 관계없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정부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 공세를 펼치는것은 큰 잘못이다. 정부와 국민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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