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 지 두어 시간 남짓. 평소 같으면 슈퍼마켓이나 비디오 대여점을 찾는 주민들로 시끌벅적할 골목이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23일밤 대구시 동구 신암동. 최근 두달 사이 6명이 목숨을 잃은 곳. 2월들어 1주일만에 5명이 온몸을 난자당한 채 피살됐다. 유례없는 살인극. 이 불안감은 집단 히스테리로 변했다.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큰길가 슈퍼도 10시만 넘으면 문을 닫습니다. 행여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등골이 오싹해져요. 외지 친척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올 정돕니다"
신암5동 주민 김덕기씨(38·가명)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주위를 둘러본 뒤 황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에선 20일 밤 2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동네에 방범초소 1백개가 있으면 뭘합니까. 좀도둑 때문에 그렇게 시달렸는데 이젠 멀쩡하던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가고 있어요. 범인을 한 명이라도 잡아야 끝날 줄 모르는 연속 살인극이 주춤할 것 아닙니까"
같은 동네 황모씨(50)는 치안 부재를 탓한다. 경찰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같은 동네에서 6명이나 죽었겠느냐는 것이다. 이틀 전 방범순찰회비를 받으러 온 사람에게 돈 대신 면박을 줘 돌려보냈다고 한다.
취객의 구성진 노래가락이 끊긴 한 동네 골목. 뒤에서 발소리라도 들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처음 한두명 죽었을 땐 남의 일이려니 생각했죠. 하지만 이젠 다릅니다. 당장 가족이나 이웃이무자비한 살인극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니까"
신암동에서 10년째 슈퍼를 한다는 박모씨(45)는 일찌감치 가게 문을 내렸다. 손님이 없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겁이 나서다.
"언제 누가 뛰어들어 칼을 휘둘러 댈 지 모르는데 장사는 무슨…"
밤9시를 조금 넘은 시각. 신암동 밤거리는 적막했다. 문 닫는 가게를 뒤로한 채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뻣뻣했던 목덜미가 그제서야 풀렸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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