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재즈-하드 밥

이 시기 트럼펫에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었다면 테너 색소폰에는 소니 롤린스(1929~ )가 있었다.역사상 최고의 테너중 한 사람이었던 롤린스는 콜맨 호킨스와 찰리 파커의 영향으로 음악적 방향을 스윙과 밥의 조화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재즈계 주류에서 밀려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언제나 최고의 재즈맨들과 레코딩을 했다.

파커를 비롯해 텔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 마일즈 데이비스, 아트 블래키, 클리포드 브라운, 존콜트레인에 이르기까지 최상급의 단원들이었다.

그의 최고작은 하드 밥이 유행하던 시기에서는 다소 지난 50년대 중반에 발표된 'SaxophoneColossus'와 'Tenor Madness'가 손꼽히고 있다.

그는 말이 많은 재즈계에서 몇가지 기행을 한 인물로도 남아있는데 54년과 59년 2번에 걸친 잠적이 그것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마약과 술이었지만 음악적 아이디어의 고갈과 음악적 증진이 필요하다는 개인 인식이었다. 두 시기 다 롤린스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최고의 전성기였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첫 복귀(55년)는 화려했고 재즈팬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두번째 복귀(61년)는 이미 시대가 바뀌어져 있었다. 하드 밥은 희미해지면서 프리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이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鄭知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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