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밥짓는 아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는 말들을 자주 쓴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역설이 숨어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 말이 요즈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15년간을 시어머니와 남편,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아내에게도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신통(?)하다. 문 밖을 나가 본 적이라고는 없는 아내에게 1년간 해외여행을 떠나도록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집에 남아서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생활과학업 뒷바라지를 해야하는 필자의 엄청난 스트레스는 제쳐두더라도….

일단 입장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니 결정은 예상외로 쉬웠다. 우리도 가족 차원에서 21세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떠밀다시피 아내를 비행기에 태웠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입장 바꾸기와 역할 조정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적어도 아직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무엇보다도 가족 모두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재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대부분 그렇듯 일을 핑계로 소원해질 뻔했던 딸들과의 의사소통 관계도 완전히 회복되었다. 잔정이 없다는 핀잔을 받던 필자가 모이(?) 주는 일을 통해 모성애를 직접 체험한 것 또한 무엇보다소중하다. 딸들이 엄마 고마움을 되새기게 된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필자도 아내의 고마움 표시까지 받았으니….

딸의 친구들은 이런 입장 바꾸기가 신기했던지 자기 부모님들에게 그대로 전했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필자의 딸이 걱정스레 되묻는 말은 "아빠, 우리 집 아무 이상 없는 거지?"대구·경북의 아빠들이여!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가족을 위하여 밥을 짓자. 입장을 바꾸어 보자.〈백권호-계명대교수·중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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