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상사회' 만들자 (7)-언론의 병폐

"무책임한 속보경쟁 불신 자초"

'신문지국은 전쟁·전쟁터에서 2등은 패자'

한 재벌신문의 지국장 회의자료에 나타난 문구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신문사간 경쟁이 얼마나 살풍경한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같은 살풍경은 곧 우리 언론의 병폐와 연결된다.끊임없는 판매 광고경쟁, 속보경쟁과 과장보도, 오보의 양산. 이 가운데 깊어가는 언론에 대한 불신. 우리 언론이 당면한 현주소다.

어느 사회학자는 한국의 최대 병폐로 첫째를 정치, 둘째가 관료, 셋째가 종교, 넷째가 언론이라고말할 정도로 언론의 폐해는 엄청나다.

지난해 보도돼 큰 파장을 몰고왔던 성혜림 사건은 검증없는 우리 언론의 그릇된 행태의 대표적사례다. 김정일의 전처가 망명을 기도했다는 이 보도는 적어도 사실 검증을 바탕으로 했어야 했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기사와 소설의 차이는 전자는 소스와 사실검증을 바탕으로 하는 반면 후자는 상상에 바탕한 픽션이란 점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앞선보도를 최우선 한다. 이 사건은 아직 확인되지않는 상태에서 이한영씨 피살이란 결과를 낳았다.

우리 언론의 무책임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피살사건 당시 우리 언론은 아무런 검증없이 북한의 조직적 테러범행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써나갔다. △독침에 의한 피살 △범인으로 보이는 조선인 검거 △범인은 조선인 노동자 차림 3인조등의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외무부가 언론사에 추측보도 자제를 요청했을 정도다. 우리 언론을 소위 '냄비 언론'이라 비아냥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의 사실 검증없는 보도태도는 남북관계뿐아니라 때로는 국제관계를 어렵게하는 요인이 된다. 일본인 마치다 미쓰구씨(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는 "한국언론의 보도내용이 '어지간히 과장된 기사로구나'싶은 보도가 제법 눈에 띈다. 보도내용이 사실과 현저히 다를경우 한일 우호관계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며 "언론의 영향력이 엄청난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 진단했다.

방송 또한 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국적불명의 저질 쇼프로그램을 무차별로 방송, 청소년들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신문판매원간의 살인사건은 심각하게 곪아가던 신문 판매시장의 문제점을 단숨에 사회적 이슈로 떠올렸다. 세간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이도 잠시, 보름도 안돼 '경품제공''무가지 살포'등 판촉전은 다시금 가열됐다. '신문부수'가 사세를 결정짓는 우리 언론 풍토에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동황교수(광운대 신문방송학)는 "어느 신문도 내용이나 논조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 신문별로특정독자층을 겨냥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양적 팽창만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이렇게 부수를 늘리려는 이유가 광고수입의 증대에 있다는 사실때문에 부수만능주의는지면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업성과 이윤추구에 매몰된 부수 확장의 자세는 결국 지면의 질개선을 도외시하고 저급화로 빠지는 첩경"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주요 신문의 구독료는 한달 8천원선. 그러나 신문사는 신문 판매수익으로는 지대도 건지지 못한다. 신문구독료가 적절히 원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때 판매수익으로는 늘 적자일수 밖에 없다. 언론전문가들은 판매적자는 '판매촉진비'등을 포함, 1부당 1만원선으로 보고 있다. 1백만부의 부수를 발행하는 신문사라면 판매에 따른 적자부담은 1백억원선이라는 계산이다. 자연히 적자를 만회하는 방법은 광고수익에 의존한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신문산업은 판매수입에 비해 광고수익이 지나치게 높은 기형적 구조를 안고있다.

광고주 최모씨는 "특정 언론사에만 광고를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 특정사에만 광고를 게재했을경우 타사로부터 끊임없는 압력과 보복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에 전 언론에 광고를 개재하든지 아예 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라고 개탄했다.

광고에 의존한 신문경영의 더 큰 병폐는 사이비 언론을 양산하는 온상이 된다는 점이다. 공보처가 발행한 '사례로 본 사이비 기자'에 따르면 '광고강매'는 '약점미끼 금품갈취'와 더불어 사이비언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같은 비상식적 신문 경쟁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신문발행공사제도가 정착돼야 한다는여론이 높다. 1914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ABC제도는 이미 8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웃일본의 경우도 90년대 들어 이 제도는 완전 정착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문발행공사제도(ABC)는 설립된지 10년이 가까워지도록 여전히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신문계의 모순과 파행앞에 속수무책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기관도 신문에 관한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한다. 언론이 여전히 치외법권지대로 남아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날로 실추되고 있는 언론의 권위회복을 위해 언론 스스로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鄭昌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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