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남산(11)-각양각색의 미소

남산은 낮이나 밤이나 웃음이 있어 서럽지 않다. 고적한 숲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불상을 통해서,또 멀리 산꼭대기에 올려다 놓은 탑들에게서 웃음소리는 들려온다. 그러나 이 소리는 거친 호흡과 이마에 맺힌 땀을 통해 남산의 태깔을 터득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고요의 침묵이다.부처의 웃음소리를 듣기위해 찾은 동남산 미륵골 보리사. 법당 남쪽 언덕에는 비탈진 대밭을 가르는 바람을 의연히 맞고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자리잡고있다.

가느다란 눈매에 앙다문듯한 좁은 입술. 부처자신의 손바닥안에서 벌이는 세인들의 아귀다툼을나무라듯 허한 웃음을 짓고 계신다. 무한한 광명이 어린 미소에는 근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가득하다. 화려한 꿈속에 노니는 듯한 보리사 부처. 지체높은 대감댁의 큰 도련님을 닮았다.보리사에서 얼마 멀지않은 부처골에는 평범하게 생긴 부처가 계신다. 미륵골입구에서 4백여m 가파른 고개를 오르다보면 나타나는 세갈래 길. 옆길로 빠지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팍팍한 오르막길을 10여m 다시가면 이내 표지판이 나타난다. 사람 키 두배가량 될법한 큰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앉은 부처.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부처를 부처골 감실부처님이라 부른다.

다소 숙인 둥근얼굴속 살찐 뺨과 두툼한 입술사이 배어나는 한없는 웃음. 얼굴의 부드러운 곡면볼언저리 어딘가 숨어있을 법한 볼우물. 정겨움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투정과 어리광마저도 다 받아줄 것같은, 맘씨 좋은 하숙집아줌마같은 부처. 고단한 삶의 질곡속에서도 미소을 잃지않고 살아가는 아낙의 모습이다. 보리사부처가 귀족이라면 감실부처는 평민이다.권위를 내세우지 않아 친근스럽고 잘생기지않아 시샘이 가지않는 부처. 남산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강우방 경주국립박물관장도 감실부처를 놓고 옛스러움이 두드러져 남산에서 가장 정감있는 부처로 꼽았다.

부처의 무릎아래 누군가가 봉지에 싸인 과자하나를 정성스레 갖다 바쳤다.

아직도 동심을 꿈꾸는 소녀의 손길처럼 고운 마음씨가 절로 느껴진다.

동남산을 빠져나와 포석정을 지나치자마자 선방골입구에서 보이는 삼불사이정표. 삼불사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이내 석조삼존불이 자태를 드러낸다.

동심이 가득한 본존불은 천진스런 아이를 연상시킨다. 전신의 키가 머리길이의 다섯배. 아기신체와 같은 비례다. 귀여운 부처는 금방이라도 장난기가 발동할 것만 같다. 곰살궂은 이 부처와 보살은 세월의 풍상으로 부근 곳곳에 흩어져 누워있는 것을 지난 23년 한곳에 모아 세워졌다. 산방골부처와 유사한 아기부처는 경주국립박물관에도 있다. 이들 두 삼존불을 비교해보면 심오한 부처미소의 끝자락이라도 잡아볼수 있을 것같다.

박물관 한귀퉁이에서 밝은 꿈에 잠겨있는 장창골 돌미륵 삼존불. 화강암의 견고한 석질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선방골 삼존불이 장난꾸러기 아기부처라면 장창골 삼존불은 순하디 순한 '귀염둥이'아기부처다.특히 본존불 왼편의 좌협시보살이 짓는 미소는 남산부처미소의 백미(白眉)라 할만하다. 이불상의발견자리를 놓고 혹자는 삼화령아기부처라고도 부르고 있으나 사학계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남산에서 가장 잘생긴 부처는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있다. 삼릉에서 상선암으로 1시간가량 오르는 수고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합장하는 마애여래대좌불. 남산좌불중 제일 큰 부처다. 시원스레뻗은 콧대와 정교한 곡선을 갖춘 눈썹등 용모가 하도 수려해 보리사 부처와 자웅을 다툴법하다.산아래를 굽어보는 부처의 그늘진 눈언저리에 미소가 스치듯 어려있다. 부처의 웃음이 장엄한 시가 되어 산전체에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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