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원의 '작은사랑'이 검은돈 '억·조'보다 더 위력

한보관련 비리에서 거론되는 돈 단위는 조(兆). 일반 시민들은 '조'라는 단위에 무덤덤하다. 남들이 많다니까 많은가보다 싶지만 1조원이 모이려면 1만명이 1억원씩내야 하는 엄청난 돈이다.그러나 정말 큰일을 해낸 돈은 '억'이나 '조'가 아니라 '만'이었다. 보잘것없는 '만'과 '십만'이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매일신문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한 10여명에게 삶을 되찾아 주었다.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돼지저금통을 뜯은 고사리손도 있었고 뜻있는 일을 찾던 사업가도 있었다.

한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삶을 포기했던 사람,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해도 의지할 곳 하나 없어 생명의 끈을 놓으려던 사람, 이웃의 무관심속에 꿈을 포기한 이들에게 1만원은 결코 적지 않았다. 수줍게 건네는 1만원 속에 담긴 따스한 인정은 이들에게 한가지 믿음을 심어주었다. "아직세상은 살 만한 곳이군요"

지난해 9월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기업도산으로 밀린 급여 6백만원을한푼도 받지못해절망에 빠져있던 중국동포 김광태씨(61). 그는 이름을 숨긴 한주부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가족품에 돌아갈수 있었다. 중국으로 떠나던 날 김씨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숙여 감사했다.이웃의 작은 도움은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던 김남규군(7)의 생명도 지켰다. 수술비를 보조받은남규는 빠른 회복세 덕분에 이달초 퇴원, 주위사람들을 기쁘게했다.

도움의 손길은 형편이 어려운 대학 새내기에게도 닿았다. 지난2월 사회복지시설 구세군 혜천원출신의 송혜양과 은주양이 대학등록금이 없어 발을 구르고 있다는 매일신문 보도가 나가자 도움의 전화는 줄을 이었다. 반찬값을 아껴 1만원을 보낸 주부등 수십명이 사랑을 나눠주었던 것이다.부모도 없이 급성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최재영군(16·평리중 졸)도 목숨을 건졌다. 죽기보다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버티게한 삶의 열정도 생겨났다. 수십만원을 웃도는 항암제는 그간 모아뒀던 도움들을 모두 갉아 먹었지만 세상에대한 소중한 믿음이 이아이를 아직 버티게한다. "엄마아빠가 보고 싶네요. 빨리 회복해서 나도 누군가 도와야 할텐데…"

하루아침에 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았던 북구의 이명규씨(55) 일가도 이웃의 '나눔'속에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처음 살아보는 황금동 2층집에서 이씨의 팔순노모는 가슴의 응어리를 쓸어내렸다. 이들에게 선뜻 집을 빌려준 유모씨(40)는 "이웃을 돕는것은 큰 돈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정을 실은 전화 한통도 이들에겐 큰 힘이다. "돈이 적어 신문사로 보내기가 쑥스럽군요" "직접 안부도 묻고싶으니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더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습니다"…많은 시민들이 지금도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

〈金秀用·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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