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작업 테마(서각가 유장식씨)

날카로운 끌이 춤을 춘다.

쉴새없는 손놀림은 나무조각 위에 문자(文字)를 새기고… 아로새겨진 문자는 살아 숨쉬는듯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에 각인된다.

서각(書刻).

회화나 일반 서예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지만 문자를 소재로 나무나 돌등의 재료에 양(음)각한 서각은 평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입체적 조형미를 일깨워준다."전통서각이 건물 현판 제작에 활용되는등 실용적 측면이 강했다면 현대서각은 동양예술의 근간인 서예를 바탕으로 질감과 채색을 가미, 현대인의 미감을 충족시켜주는 문자조형예술이라 할 수있습니다"

유장식씨(48·한국현대서각협회 이사장). 서양화가였던 친형 유길식씨(작고)의 영향으로 회화와조각, 공예분야를 전전하다 독학으로 서각에 빠져든지 20여년.

그는 서각이 곧 촉각예술이라 잘라말한다. 붓을 통해 나타난 글씨가 각도(刻刀)를 거쳐 생명을 얻는, 우러나는 '칼맛' 때문이다.

서각의 작업과정은 새김-채색으로 비교적 단순하지만 서고(書稿·새기기 위해 종이에 쓴 밑글씨)를 작품재료에 붙이거나 재료에 글씨의 본을 떠 새기는 방법, 재료위에 직접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혹은 밑글씨 없이 바로 새기는 방법등 기법은 다양하다.

나무와 브론즈등을 재료로 한 입체각, 종이등 보조재료를 사용한 부조 형식의 평면서각등 작품종류 또한 많지만 이들의 근저에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원리가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문자가 사물의 형태를 본뜬 상형(象形)에서 비롯, 기호화된 의미전달의 체계이듯 문자를 새긴 서각도 독특한 회화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서예공부를 겸하지 않은채 다른 사람의 글씨를 받아 그대로 모각(模刻)하는 것은 순수한 창작이라 볼 수 없습니다. 직접 글씨를 쓰고 입체적인 형상화 작업을 거듭하는 가운데 표현의 영역도확대되죠"

자신의 말처럼 그는 자필자각(自筆自刻)에 입각한 5번의 개인전외에 그간 실내 작업에만 머물렀던 서각을 수년전부터 바깥 나들이(?)시키고 있는 장본인이다. 대구보훈회관에 세워져있는 '호국(護國)', 대구 상은타워빌딩의 '문(門)', 달서구 상인동 제림타운의 '임(林)'등 야외조각은 모두 서각을 환경조형물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그의 작품들이다.

"요즘은 문자 자체의 의미를 조형화하기보다는 문자를 오브제로 활용, 제 자신의 심상을 표현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달성군 우록리의 작업실 '죽하우록산방(竹下友鹿山房)'(767-1801). 편봉끌(날이 한면만 선 끌)을힘주어 잡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그의 손이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나는 끈질긴 나무의 생명력에서 따온 자신의 호 목암(木岩)과도 같이 미덥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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