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이테크 문화유산-전통한지(12)

세계최고 품질의 전통한지.

종이 발명국이자 선진문물의 종주국으로 자부하는 중국에서도 우리 한지를 대량으로 수입해갔다.뛰어난 표백, 강인한 섬유의 질, 잘고 균일한 섬유로 만든 매끄러움은 세계어느 민족이 만든 종이보다 강도가 우수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앞서고 있다.

송나라 손목이 지은 '계림지'에 '고려의 닥종이는 윤택이 나고 흰빛이 아름다워 백추지(白石垂紙)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 '고반여사'에도 '고려종이는 누에고치로 만들어서 비단같이 희고 질기며 글을 쓰면 먹이 잘 먹어 우리 중국에는 없는 진품이다'고 그 우수성을 지적했다.원나라에서도 불경을 새기는데 고려종이를 썼으며 한번에 10만매씩 구입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종이는 색이 흰데다 매끄럽고 튼튼해 외국에도 빼어난 품질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송나라에서 높이 평가받아 많은 양을 수출했다.

이처럼 고대에 전통한지는 중국에서 매우 인기있는 품목이었으며 지금도 중국여행객들이 이 한지를 자주 찾는데서 그 우수성이 입증되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정동찬 과학기술사연구실장은 "실험에 의하면 한지는 반투과성뿐만 아니라 흡음성 및 밀도도 뛰어나 스피커 음향판이나 개스킷 등 첨단 소재개발에도 좋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는 중성종이라서 세월에 관계없이 1천년 이상 가는 종이다. 옛 책을 보면 화학종이로 만든 책에 못지않게 깨끗하고 질 긴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화학(산성지)종이는 1백년이 채 못간다고 한다. 수십년만 지나도 종이가 붉게 삭아 부스러질 정도로 약품이 쉽게 변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지법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610년 고구려사람이 일본에 건너가 채색법과 함께종이와 먹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는 것.

신라사람들은 판목전체에 글자를 새기고 종이를 얹어 인쇄하여 본격적인 의미의 목판인쇄를 일궈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 속에서 나온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 이것은 일본 호류사 경문을 세계최고의 인쇄물로 인정한 것을 뒤엎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일본 호류사 경문보다 20년 앞선 이 인쇄문은 조각기술이 정교하여 글자가 약동하는 듯 하다. 일본 것은낱글자를 새겨 옮겼으나 다라니경은 판목전체에 글씨를 새기고 종이를 얹어 인쇄한 본격적 의미의 목판인쇄본이다. 다라니경 인쇄본은 상하 폭 6.5cm 길이 약 7m 정도의 한지 두루마리 각 줄에 문자가 7~9자씩 들어차 있다.

닥풀에 누에고치 가루를 넣고 만든 한지는 가죽처럼 질겨 전통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선조들은 한지를 여러겹 겹치고 기름을 먹여 보관함 등 생활용품에 적극 활용했다.한지에 붓글씨를 잘못 썼을 때 물에 빨아 다시 말려 쓸수도 있어 그 재활용 가치 또한 크다.인쇄술을 꽃피운 고려종이는 색이 희고 매끄러운 백추지나 비단으로 만든 종이처럼 깨끗하다 하여 이름을 붙인 견지(絹紙), 고려청자를 연상케하는 고려청자지, 그리고 금가루를 뿌린 금분지 같은 여러종이를 만들어냈다.

한지에는 소나무속껍질을 섞어서 만든 송피지, 등나무를 원료로 한 등지(藤紙), 귀리잎으로 만든고정지(藁精紙) 등 재료에 따라 15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재질의 특성을 살려 만든 종이는 외교문서에 쓰였던 고급종이인 자문지(咨文紙), 한시를 썼던 시전지(詩箋紙), 책지, 족보지 등 품질에 따라 수십가지로 이용되었다.

한지제조는 원료의 특성과 기후조건을 잘 활용한 과학적 제조공정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원료로는 닥나무나 등나무 따위가 이용되었다. 1년생 닥나무를 베어 재료를 큰 가마솥에서 쪄낸 다음껍질을 벗기고 말렸다. 이어 물에 담가 하루 밤낮을 불리고 내피를 벗겨서 태양열로 건조시켰는데 이런 중간재료를 흔히 백피(白皮)라고 불렀다. 흑피 5백근의 껍질을 벗기면 약 2백근 정도의백닥을 얻을 수 있다.

다음에 끓는 잿물 속에 백피를 넣고 삶는다. 이것은 뒤엉킴을 막기위한 것. 이어 흐르는 물에 반나절정도 담가두거나 지하수로 2~3회 물을 갈아주면서 잿물을 씻어낸다. 이 공정을 마치면 햇빛을 쬐어 흰색을 띨때까지 탈색시킨다. 이 과정은 물속에서 햇빛의 작용으로 오존, 과산화수소수가 발생하여 산화표백하는 것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섬유가 손상받지 않는 이점이 있다. 표백을 마친 다음 건조시킨 후에 몽둥이로 때려 가루로 만든다. 이어 풀을 섞고 휘저은 다음 종이를 뜨는 틀에 얹어놓고 균일한 종이층으로 만드는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이렇게 만든 습기있는 종이층을 판위에 한장씩 옮겨서 적당한 다짐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한 다음마무리공정을 거친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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