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봄비가 내린다. 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고 산기슭마다 새록새록 춘정(春情)이 일렁인다.고적한 풀섶 어디선가 화동(花童)이 뛰쳐나와 춤이라도 출것 같다. 남산이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았다. 신라때 남산처럼…
지금으로 부터 천년 전 남산은 골짜기와 봉우리마다 목탁과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지금은 페허의 더미위에 잔해만이 남아 옛날을 회고할 뿐. 아련한 꿈인 듯 천년의 세월이 희뿌연안개속에 금방이라도 다가올 듯 한데 신라때 화려한 영화는 오간데 없다.
최근까지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남산의 사찰은 1백27개. 이중 1백16개절터가 페허로 변모했다. 억센 역사의 질곡과 살아남은 자의 무관심 때문이다.
그많은 절터를 다 찾아 헤매자면 1년의 세월도 모자랄 판. 훈훈한 옛향기만이라도 더듬어보기위해 천관사에 먼저 발길이 닿았다.
천관사는 남산을 가로지르는 서라벌 대로 때문에 일반인들이 찾기힘든 논 한가운데 자리잡고있다. 경주박물관에서 남천을 옆에 낀 도로를 따라 교부교를 건너 눈길이 와닿는 천원마을 표지판.고샅을 돌고돌아 구멍가게에서 길을 물어 논둑길을 10m가량 걸어가면 천관사터에 이른다. 석재와주춧돌등이 탑재에 박혀 절의 규모나 방향을 알길이 없으나 김유신과 얽힌 허허한 사랑이야기가전해오는 천관사. 천관은 신라시대 어여쁜 기생의 이름이다. 말에 올라타 잠든 사이 타박타박 걸어 천관의 집으로 안내하던 애마의 목을 과감히 베버리고 발길을 끊은 김유신. 이를 바라본 천관의 애끓는 심사가 어떠했을까. 천관은 그리운 님을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하고 혹은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어 김유신의 발복을 기원하다 숨졌다고도 전해진다. 후일 김유신이 이사실을 알고 가련한 여인의 극락왕생을 위해 천관이 살던 집터에 절을 지은 것이 천관사 유래다.이곳에서 걸어서 20분가량거리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김유신이 "물맛이 옛날 그대로구나"하며집에 들리지도 않은 채 전장에 나간 사연이 얽힌 곳. 김유신 집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 재매정에서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보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남천 월정교(현재는 터만 남아있음)를건너 천관의 집을 오가던 김유신의 체취가 명상속에 그려질 법도 하다. 발길을 돌려 동남산 끝자락 쑥두듬골 언저리에 위치한 염불사터. 남산부석이 올려다보이는 이곳 염불사터는 2기의 페탑자리가 허망하게 남아있다. 신라사람 모두가 맑고 부드러운 염불소리에 취했다는 낭랑한 목소리의스님이 계신 곳. 이제 어디서 그 청아한 염불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서남산에서 나정입구쪽으로 들어서 1km가량을 가다보면 오른 편 논 한가운데 의연히 터를 잡고있는 남간사터 당간지주가 보인다. 당간지주란 불보살의 공덕과 벽사(僻邪)의 목적으로 당(幢)을걸었던 장대. 이 당간지주는 남산의 수많은 절터중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다. 이곳인근에 또하나의 큰 절터 창림사터가 있다. 지금은 삼층석탑과 거북이모양의 쌍귀부만이 남아있다.
남산 절터중 가장 규모가 큰 절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천룡사터다.
골짜기 이름마저도 천룡골. 천룡사터에 가려면 산기슭 와룡사에서 모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한다. 고개티 치받이를 헐레벌떡 기어오르는 고통을 1시간가까이 참아내야 이를 수 있는 천룡사터.험난한 길의 끝에 펼쳐지는 장엄한 풍경은 이마에 흐른 땀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깊은 산속에서 펼쳐지는 드넓은 분지, 눈 앞에 다가서는 고위산의 수려한 풍광, 절터를 향해 포근히 감싼 주위 산봉우리들. 감탄사는 이 풍경을 위해 많은 시간을 참아온 듯 '억'하며 놀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넓은 분지위에 삼층석탑이 하늘을 향해 서있다. 인근 비닐하우스 뒤편의 석조(石糟), 고위산 비탈진 기슭의 맷돌, 북쪽 계곡아래 석종형부도(90년 발굴조사당시 연못속에 있었음)등 잔해들이 어마어마했던 천룡사의 규모를 짐작케하고있다. 이곳에는 4가구만이 단촐한 삶을 일구며 살아가고있다. 밭에 소를 몰며 김을 매는 농군의 모습이 정겹다. 이 넓은 터에 도를 닦으며 살아가던 그 많은 스님의 선풍(禪風)이 선량한 농군을 통해 가슴에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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