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왜 이제서야 신언패 를 벗어 던지나

왜 이제서야 신언패 를 벗어 던지나

사극(史劇)드라마들을 보면 통촉하옵소서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가납(嘉納)하여 주소서 라 는 말도 귀에 익다.둘다 신하가 군왕(君王) 에게 바른말을 진언할 때 쓰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군왕이 어리석거나 고집이 세 통촉 할줄도 모르고 가납 해주지도 않으면 아무리 충직한 충신참모들이 기라성처럼 있어봤자 조정(朝廷)은 제대로 굴러가질 못하고 서서히 군신간의 언로 만 막히게 된다.

그 결과 신하들은 직언을 싫어하는 군왕의 눈치를 살피면서 까마귀를 보고도 희다고 말하는 지경 에 이르게 된다.우리의 역사속에도 직언을 싫어한 군왕은 적지 않았다. 연산군만해도 왕에 관한 일은 입으로 말할수 없음에도 이따금 변변치 못한 무리들이 자주 불온한 말을 내니 징계치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자가 있으면 마디마디 베어 죽이고 부자형제는 참형에 처하며 사촌은 남 녀 가리지 않고 곤장형에 처한 뒤 온 가족을 변방으로 내쫓아라 는 엄명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래도 민심의 입은 막지 못했던지 모든 조정의 관리들에게 신언패(愼言牌:말조심 팻말)를 달고 다니게 했다. 독재자가 걸어씌운 신언패 였지만 새겨진 글귀만은 사뭇 그럴 듯 했다. 입은 화를 가져오는 문이요 혀는 내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 안해 곳곳이 안온하리라 한보 국정조사특위가 열리고 있는 요즘 질의 위원들과 정부측 고위관리 그리고 검찰, 여야 정치인, 언론등 도처에서 저마다 터져 나오는 말 들을 듣다보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달고 다니던 신언패를 이제사 벗어 던졌는가 싶을 만큼 분방하고 요란하다. 특위위원들은 웬일인가 싶을 만큼 추상같고, 도도하던 검찰은 지난 수사가 미숙하고 신뢰를 잃었 음을 이실직고 하고 야당의원은 대통령의 비자금 수수의혹을 제기하고 언론은 오늘은 웬지 쓰고 싶다 는 식이다.

그렇게 한맺힌 듯 풀어놓는 수많은 바른 말들을 품고 있었으면서 왜 진작 입을 못열었는지 그 뜨 겁던 권력의 해가 기울기 시작하니까 땅거미를 타고 날기 시작하는 박쥐처럼 기를 펴는 것이 아 니길 바라지만 눈치보며 신언패를 차고 있을 때와 신언패를 벗어 던졌을 때의 모습이 너무도 극 명하게 갈리는 듯 보여 입으로는 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웬지 멋스런 느낌이 들질 않는다. 나라가 오늘날 이 곤경에 처한 것은 통치자가 민심의 소리를 통촉 하는 지혜가 모자랐고 신하들 의 곧은 의견을 가납할줄 아는 포용력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다고 모든 난국의 책임이 통촉 능력없고 가납할줄 모르는 군왕쪽에만 있고 스스로 입을 닫고 불의와 부패를 공모, 동조하고 묵인하며 권력의 논리에 맞춰 추종한 쪽은 과연 도의적으로 무죄 인가.

되돌아보면 우리는 늘 이번 난국과 똑같은 식으로 살아온 구석이 없잖다. 권력을 쥔쪽은 민심의 힘에 밀리는 순간까지 버티다가 그럴듯한 정치적 명분을 갖다 붙이며 위장된 항복을 한다. 언론 과 정치권은 그런 힘의 균형 틈새에서 시이소를 탄다. 6.29선언도 그런 예였다. 한보비리가 터지지 않았고 김현철씨 의혹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국회와 검찰이 그리 고 언론이 그처럼 신언패를 벗어 던진 모습을 보일수 있었을까를 자문해 보자. 왜 이제서야 신 언패 를 벗어 던지나. 어제 오늘 어수선한 나라 형편을 보면서 한가지 꼭 새겨야 할점은 바로 그 런 점이다. 평소부터 끊임없이 통촉하고 진언하는 군신의 자세를 서로가 가다듬어 왔다면 국민을 속이려 드는 권력의 부패와 권력의 힘이 부칠때라야만 바른 목소리를 내는 불의를 고쳐 나갈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신언패는 씌우지도 쓰지도 않겠다는 각오를 다질때다. 그리고 다시 일어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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