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YS의 선택

여권에서 대통령후보를 거론할때 마다 마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중 하나가 김심(金心) 이다. 그러나 본선을 8개월여 앞둔 현재의 시점에서 이른바' 김심'은 언어학적인 개념에서 볼때 이젠 한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져 버린'사어(死語)',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동법 개정파문과 뒤이은 한보사태, 황장엽(黃長燁)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 김현철(金賢哲)씨가 저지른 무소불위의 국정농단의 실상이 연일 드러나면서부터 김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마치백사장에서 모래를 한웅큼 쥔 손아귀와 다를 바 없다.

새지 않는 것이 없으니 제대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 있을리 없다. 레임 덕이란 말은 서양에서 제대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원수들의 임기말을 표현한 것으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양상과는 비교 자체가 무리다.

현실적으로 정치권 어느 공간에 김심이란 말이 존립할 수 있을까.

마침내 김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대국민담화에서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한 경선이 되도록 하겠다"면서 "당원들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1월초 연두기자회견때 자신이 후보를 낙점하겠다는 사실상 '지명'의사를 강력하게 내비쳤던 것에 비하면 권력자로서는 사실상의 항복선언과 진배 없다. 그런데 김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신한국당 전국위원회에서 이회창고문을 대표로 전격 발탁했다. 또한번 일반의 예상을뛰어넘는 특유의'파격'을 감행함으로써 일단은 출구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회창(李會昌)대표가 과연 김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지는 신한국당 어느 3선의원의 표현처럼" 김대통령 자신도 정확히 모를걸…"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이 말은 김심의 작용여부는 차치하고라도 현상태에선 김심 그 자체가 없다고 보는것이 정확할 것같다. 그렇다면 자신과 수십년동안 정치행보를 같이 해 온 민주계는 대체세력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당내 최대계파인 민주계로선 그 중심축인 최형우고문의 와병으로 인한 낙마로 일단 김심에서는 사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

구체적인 언급이 확인된 바는 아니라도 기회있을때 마다 김대통령은"경상도정권은 나로써 끝내야한다"는 뜻을 민주계 중진들에게 주지시켜온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차차기(次次期)를 기약하는 포석으로 후보경선까지는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묵시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가설을 토대로 한다면 김심의 대상은'4이(李) 1박(朴)', 즉 이홍구 이회창(李會昌) 이한동(李漢東). 이수성(李壽成) 박찬종(朴燦鍾)으로 일단 좁혀진다. 우선 여당대표로 김대통령곁에다가선두 후보.

작년 4월총선후 정치초년병 이홍구씨가 당대표로 들어갈 때 김대통령은 이대표의 부족한 당 장악력을 도와 준다는 명분아래 대표보좌진용을 거창한 규모로 편성하면서 잔뜩 무게를 실어주었다.그러나 이는 다른 후보군을 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음이 드러났고 결국 이대표는 충실한 '관리형 대표'로 자리매김됐을 뿐이다.

전임 이홍구대표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이회창대표가 김대통령이 더 이상 버틸 힘이없는 체념상태에서 택한 카드라는 평가는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대표의'대쪽'이미지를 이용해 난국을 돌파하고정치적 역량이나 자신과의 관계 등을 검증해 본다는 계산이 깔린것으로 해석하는 쪽이 많다.이한동고문이나 박찬종고문에 대해 김대통령이 특별히 호의적인 평가나 관심표명이 있었던 적은없다. 그렇다고 멀리 하는 징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느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등거리에서 공평함을 보여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 3월4일 국무총리를 교체하면서 이수성전총리를 그날로 신한국당 상임고문으로 들여놓은 것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김심은 이수성'이라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각계로부터 두루 호평을 받고있는 이수성고문이라고 하더라도 당내기반이 없는 형편에서 당장 후보반열에 든다고 보는 시각은 무리다.

그래도 이고문이 앞으로의 여권후보 경선전에서 상당한 변수로 작용,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관측은 틀림없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 분석이다. 더구나 이수성고문이 최근 고향(경북 칠곡)을 다녀오고 사무실을 내는 등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하고 있는 것도 김대통령과 충분한 교감이 있은게 아니겠느냐는 시각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결국 김대통령은 현재의 복잡한 당내 세력분포를 마지막까지 예의 주시하면서 분명한 김심의 표출을 가능한한 뒤로 미룰 것으로 보인다. 즉 이회창대표의 당 장악능력과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을 면밀하게 측량할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표현해서 이회창대표가 자신의 숱한 실정을 비롯, 그의 차남인 현철씨 국정농단 문제등 난마같이 얽힌 현안들을 잘 처리해주면 그나마 남은 영향력을 행사해서 후보로 작용시킬 것이고 그렇지 못해 야권의 집중공격으로 낙마하면당내에 골치 아픈 존재 하나가 저절로 없어지게 돼 김대통령으로선 손해볼 것이 없는 상황이 된다. 그때 가서는 이수성고문 등 여타의 예비후보를 한사람씩 측량한후 자신의 퇴임후를 제대로 보장해줄 수 있는 사람만을 선택할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제대로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많을 수록 좋은 것임엔 틀림없을 것같다.

최소한 이것은 외형상의 민주적인 경쟁양상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吳起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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