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봄사냥

바늘 바람에 실려오는 꽃샘추위는 봄이 왔다는 신호에 다름이 아니다. 촉촉한 봄비에 묻어난 상큼한 신록의 내음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 오는 실바람을 타고와 봄을 알리지만, 활짝 열어 반기지 못하는 내 마음의 시려 옴은 여전하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의 길고 긴 터널은 끝날 듯 끝날 듯 턱에 차 있고, 젊음의 싱싱함과 발랄함에 실려 오는 봄은 잡힐 듯 잡힐 듯 주위만 맴돈다. 언제부터인가 봄의 행차는 나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봄의 싸늘한 그림자를 방석 삼아 꽃잎 띄운 술잔 속에 온 밤을 뜨겁게 데우던 청년 시절의 호기도, 서슬 같던 기개도 이제는 다만 잊혀진 시간대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낯선 기억으로 그렇게다가와 나를 서글프게 한다. 누구든지 언젠가 한번쯤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 대하기 싫었던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봄은 또 한번 이렇게 내 마음에 아픈 상처 그리듯이 찾아왔다가, 언제나 그러하듯 잊혀지듯이사라져 가려 할 것이다. 나의 가슴앓이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착잡함과 안타까움만 하나 가득안겨 놓은 채 그렇게….

이 봄이 지나면 다시 삼백 서른 날을 견뎌내야 새로운 봄이 오겠지. 그렇게 세월가면 안타까움아쉬움 되어 내 얼굴 주름처럼 늘어만 가겠지. K군, 지난 소원함이 마냥 미안하이. 이 봄 따라 그냥 보내기가 서럽도록 안타깝구려. 기지개 한번 쭉 펴고 젊은 날 우리처럼 봄사냥이나 다시 떠나보지 않으려나. 막걸리 한 사발에 소금 한입 털어 넣고….

〈계명대교수·중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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