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잃어버린 봄

봄이 깊어가고 있다. 목련이 순백의 꽃잎을 피우더니 벌써 고개를 떨구고 있다. 북상을 시작한 벚꽃나무 꽃구름이 걷힐때쯤이면 여름을 준비하는 연초록 물감들이 산천이란 캔버스 위에 가득 풀릴 것이다.

유독 대구는 지형적 특성때문에 봄을 느낄수 없다지만 올 봄은 정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사람들이 계절을 느낄수 없고 설사 느낀다해도 감동하지 못한다면 마음이 몹시 메말라 있음이다.*덕(德)은 다스림의 최상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불안케 하는가. 정치의 잘못인가, 경제의 흐트러짐인가, 생활의 궁핍함인가.아니다. 어느 한부분의 흔들림이 아니라 총체적 난국, 즉 메스를 댈수 없는 문드러짐 현상이 우리사회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영은 정치가라는 수준높고 식견있는 이가 이끌어 나가야 한다. '정치 몇단입네'하는정치꾼이 앞장서면 그 나라는 잘될것 같아도 그렇지 못하다.

꾼에게는 기(技)와 술(術)과 사(詐)는 있어도 덕(德)과 인(仁)과 도(道)는 없기 때문이다. 덕과 인은 남에겐 너그럽고 자신에겐 엄격할때(待人寬之身嚴) 생겨나는 덕목으로, 우리나라 정치판에선찾아볼 수 없는 희귀품목이다. 가신(家臣)·PK·자기 자식은 선(善)이요 타신(他臣)·안티 PK·남의 자식은 선이 아니라는 뚜렷한 이분법적 사고 아래선 덕과 도를 아예 논할 수 없다. 그래서예부터 덕을 다스림의 최상위에 두었고 도를 진리의 궁극에 두었다.

*不德下野는 하늘의 뜻

옛 임금들은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어도 부덕(不德)하여 정치를 잘못한 탓으로 돌렸다. 가뭄이 심해지면 왕은 삼베옷을 입고 맨발로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며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다.

깜짝쇼가 아닌 극도의 자기 절제의 실천이었다.

조선조 태종 방원은 형제를 죽이는 피의 투쟁에 승리하여 대권을 잡았지만 '부덕의 소치'를 스스로 느낀 즉시 세종에게 왕권을 넘겨주고 하야(下野)했다. 태종은 정권말기의 극심한 가뭄을 자신의 부덕으로 읽었고 돌아선 민심을 하늘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지혜로운 왕의 지혜로운 조치이자결단이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태종을 하야케한 말기적 현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나라의 빚은 1천억달러를 넘어섰고 국가경쟁력은 필리핀보다 한수 아래인 31위였다.*투명해야 난국타개 가능

노자는 '억지로 다스리려고 하지 않으면 다스려지지 않는게 없다'(爲無爲 見無不治)고 했다. 강과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수 있는 까닭도 스스로 낮추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다스림은 물흐르는 것과 같아야 하며 가장 나쁜 정치는 지도자가 백성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는 어느 수준일까. 최근 YMCA는 '문민정부에 대한 시민의견조사'를 실시, 정치발전정도는 29.8%%가 퇴보, 47.6%%가 제자리걸음이란 응답을 얻어냈다.

정치를 잘못하면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에서 먼저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법이다. 신한국당의 중진들이 권력구조문제를, 김윤환의원이 하야를 막기위해선 YS의 탈당과 거국내각이 구성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고 이 난국을 타개하려면 자식에겐 보다 엄격해야 하고 자신은 집착을 버려야 하며 국민앞에선 좀더 솔직해야 한다. 잃어버린 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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