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개헌은 과연 물건너 간 것인가.
한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던 내각제 개헌문제가 여야 영수회담을 계기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자민련 김종필총재의 내각제 주장에 김영삼대통령은 물론 한때전향적인 제스처를 보였던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까지 침묵으로 일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내각제 불씨가 완전히 사그러들었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잠시 수면하에 잠복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상황여하에 따라 다시 급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석의 배경에는 우선 영수회담에서 보인 김대통령의 태도를 들 수있다. 김종필총재의 제안에 김대통령이 보다 분명한 입장을 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한국당 이회창대표에게 "나는여러차례 입장을 밝힌 만큼 이대표가 얘기해보라"고 공을 넘긴 것은 내각제에 대해 모종의 여지를 남겨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내각제를 제기한 김종필총재도 이와 관련해서는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다. 김총재는 회담결과가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일단 공개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다며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김용환사무총장은 이와관련 "그동안 내각제를 위해 누구를 만나도 정치권내외에서 음모적인 시각을 받아왔다"며 공개적인 논의가 가능해진 사실에 주목하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또 여야를 막론하고 혼자서는 집권할 도리가 없는 세력들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점도 내각제불씨를 살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의 경우 대선후보 선두주자라고 할수 있는 이회창대표가 당론을 내세워 내각제 논의자체를 금지하고 있지만 당내 반발이 만만찮다.이한동고문의 경우에는 즉각 "강요된 목소리는 안된다"며 이대표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또 내각제 개헌문제등을 논의하기 위해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며 야권과의 연대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또 집단지도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이홍구전대표도 주목대상이다. 이전대표가 주장하고있는 '정당에서 추천한 총리지명론'은 현행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살리자는 주장이지만 내각제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이전대표의 이같은 주장은 김대통령의 의중과도무관하지 않다는 관측도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입장도 유동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자민련과 청와대간에 내각제 밀사가오갈 당시 국민회의 김총재는 가장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 양측의 내각제 합의로 자신의 대권도전이 또다시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영수회담을 통해 내각제 논의가 한풀 꺾이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야권공조의 파트너인 자민련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영수회담에서 내각제에 대해 침묵을지킨 DJ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때문에 김총재는 자신의 대권도전을 위해 내각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되는 입장에 처했다.
하지만 내각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해관계는 내각제 불씨를 완전히 잠재울수도 있다. 특히 신한국당내 반내각제 세력이 만만찮다. 이회창대표는 물론 박찬종고문, 김덕룡의원, 이인제경기지사등쟁쟁한 대선후보군들이 내각제 반대의 기치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내각제 개헌문제가 재론될 경우 여당이 친내각제와 반내각제 세력으로 분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또 국민회의도 DJP협상을 남겨두고 있지만 "내각제 개헌은 올 대선이후문제"라는 입장에 아직까지는 불변이다. 내각제 문제는 DJ의 대선승리를 위한 종속변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결국 내각제 논의가 재론될 여지는 충분하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간단치는 않은 문제다.또 내각제 개헌 세력이 갖는 동기의 비순수성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여하튼 이같은 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한 내각제 개헌 성사는 어렵다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李相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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