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운전문화

정지신호와 정지선을 잘 지키는 운전자를 몰래 촬영해 냉장고를 주는 코미디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우리의 운전문화는 심각한 상태다. 오죽하면 교통법규를 지켰다고 '양심'이란 거창한 칭호가 붙은 냉장고를 상으로 주겠는가?

우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운전대를 잡으면 조급증, 후안무치증, 욕설증이 복합된 증세가 발작해 웃지 못할 꼴불견을 연출하기 일쑤다.

횡단보도 앞에서의 일단정지는 잊어버린 지 오래며 보행자들을 헤집고라도 빨리 통과하려 애쓴다. 교차로를 만나면 전속력으로 돌진하며 신호가 바뀌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적색신호에도 정지선을 지나 횡단보도위에 정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지신호 끝무렵부터 슬슬 기동해서는 신호가 바뀌면 100m 경주를 하듯 출발한다.

해당차선이 붐비면 다른 차선을 적극 이용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과감하게 인도로 돌진한다.끼여들기, 과속, 신호무시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가는 것을 운전실력으로 간주하며 취미삼아 음주운전도 즐긴다. 절약을 핑계로 불법 주·정차를 일삼고 심지어는 무보험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후에도 운전을 계속하는 저돌성도 돋보인다.'왕초보'니 '놀부도 미소짓는 초보'와 같은 초보운전자들의 애교는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경적을울리거나 전조등을 번쩍거려서 멀리 쫓아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이에 뒤질세라 초보들도 길게 꼬리를 물고 뒤따르는 차량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초연하게 제 갈 길만 간다.

침이나 가래는 예사로 내뱉는다. 때로는 창밖으로 뱉은 가래가 뒷문 유리에 달라 붙어 당황해하기도 한다. 다른 운전자에게 마구 욕해대다 옆자리의 상사나 이성동료를 의식하고는 '아차'하는요조숙녀들도 있다.

경찰차가 앞서가면 그 뒤를 졸졸 뒤따르다가도 경찰차가 빠지자마자 광란의 경주가 벌어진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다가 경찰을 만나면 권력층인 체하며 손을 들어 보이고는 달아난다.법규위반으로 걸리면 현장탈출, 읍소, 공갈, 뇌물등 다양한 재능을 발휘한다.

완연한 봄. 주위의 차들에 기꺼이 양보하고, 또 양보받을 땐 손을 들어 답하면서 느긋하게 운전하는 운전문화가 아쉽다.

〈대구방송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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