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금융100년(3)-대구은행(6)

83년2월28일은 대구은행 치욕의 날로 기록된다. 당시 대구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대구은행 부도설이 그것.

당시는 만성적 자금부족으로 은행들이 한국은행 차입금에 의존, 교환결제를 메우는 경우가 허다했던 시절. 이날은 월말인데다 특히 다음날이 3·1절 공휴일이라 교환자금수요가 폭주, 대구은행은 마감시간까지 한국은행 지준계좌의 결제금액을 맞추지못했다.

당시 지준부족액은 통상 한은특융형식의 차입금에 의존하거나 은행간 콜자금거래로 해결하는데이날 한국은행은 차입금 긴급지원은 고사하고 오후늦게 은행 자체노력으로 콜이 매치됐으나 마감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입금을 인정해주지않아 교환결제금이 펑크났다.

이는 일반적 금융거래에서는 부도와 같은 상황. 국내 은행사상 전무한 은행 부도사태가 났으니비상이 걸린 것은 당연한 이치.

다음날인 3월1일은 공휴일인데도 불구, 대구어음교환소에서는 대구시내 전금융기관 교환담당자를긴급소집해 대구은행 수표, 어음이 결제가 안되니 원상태대로 다시 찾아가 고객들에게 대구은행부도사태를 통보하고 인출불가능 사태를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등 긴급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한 한은은 3월2일 지준 부족금액이 2월28일 소급입금된 것으로 처리해 기록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처리됐다. 따라서 각은행이 대구은행의 지불불능 사태에 대비, 전날 준비했던 역교환작업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태의 웃불은 껐으나 지준액부족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시중에는 '대구은행이 자금난으로 부도가 났다''조만간 부도가 날것이다'라는 루머가 횡행했다. 덩달아 일부은행에서는 대구은행당좌수표는 물론 자기앞수표도 받지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일부 기업인들이 대구은행 수표, 어음을 기피한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같이 한동안 대구사회를 떠들썩하게했던 부도설은 당시 한은 대구지점장이던 모씨와 대구은행간 감정대립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태발생 당일 감독권을 가진 한은대구지점에서 교환자금 부족과 관련해 대구은행 자금담당 ㅂ상무에게 전화를 하니 이미 퇴근하고 없더라는것. 한은측으로서는 지준액도 못맞춘 마당에 담당임원이 퇴근하다니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본때를 보여줘야한다며 사태를 확대시켰다는것.또 당시 정년이 다된 한은지점장 이 대구은행 이사로 자리를 옮기고싶어했으나 대구은행측이 거부반응을 보인데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즉 벼르고 있던차에 꼬투리가 생기자 앞뒤 생각안하고 법대로 처리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한은대구지점장은 다음인사에서 공무원의 경우 통상 대기발령으로 해석되는 본부 인사부소속 총재석근무로 발령이 났다. 〈池國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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