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홍규의 필름세계

"콘체롭스키 '이너서클'" 소련은 초기 7년간을 집권한 레닌이 아니라 그를 이어 30년간 집권한 스탈린에 의해 그 절반의역사를 형성했다. 그 뒤의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을 집권하지 못했다. 따라서 스탈린을 빼고서 소련을, 20세기 전반의 세계를 말할 수 없다. 그는 지금 악랄한 공산주의자의 대명사로 불려지나 소련 경제를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도록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그 국제적 지위를 높인 점에서공산주의 권에서는 오랫동안 신격화되어 왔다. 문화적으로도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완성하여독재권력에 철저히 봉사하는 예술형태를 완성했다. 지금도 모스크바대학을 비롯하여 모스크바의곳곳에 남아 있는 스탈린 식의 추악한 대형건물은 그 조악한 선전예술을 상징한다.그는 가난한 신기료 장수와 세탁부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다니며 마르크스주의에 접했으나그 이론의 바닥에 깔린 휴머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노동자선동에 바로 뛰어들었다. 여러번 투옥되었으면서도 항상 쉽게 탈출하여 비밀경찰조직의 밀정이라고 하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러시아 혁명에 그가 기여한 바는 거의 없었으나 그는 소수민족을 다루는 지위를 차지하여 소수민족운동을 잔인하게 분쇄한 공으로 1922년 공산당 서기장에 임명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이 1924년에 죽자 트로츠키가 그 당연한 후계자로 예상되었으나 당시의 실권자들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게 보인 유일한 촌사람 스탈린을 임시 후계자로 받들었다.그러나 스탈린은 곧 역사상 가장 잔혹한 학살자, 독재자로 돌변했다. 특히 그는 잔인한 비밀경찰조직인 KGB를 자신의 독재권력유지에 악용하여 1934년부터 1939년까지 3백만명 이상을 숙청했다. 그 중에는 그를 받들었던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나아가 농토 집산화에 반대한 5백만명의 농민을 시베리아로 추방하고 이동 배치했으며 모든 농민을 집단농장인 콜호스에 병합했고, 수백만 명을 질병이나 과로로 죽게 하고 비밀경찰로 하여금암살하게 했다. 1931년에는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이 금지되었고 결근한 노동자들은 혹독하게 처벌당했으며 정부의 승인 없이 일자리를 옮기지 못하게 했다. 또한 모든 사기업을 국유화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1940년 그는 멕시코에 망명한 트로츠키를 암살하여 그야말로 절대권력을 수립했다.

그는 자신을 '오늘의 레닌', 구세주, 살아있는 성자로 부각시켰다. 그에게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체포되어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추방되었다. 1930년대 중반의 그는 제정러시아 시대의 압제가 무색할 정도의 압정을 펼쳤다. 그는 레닌과 함께 공산주의 러시아를 수립한 모든 정치지도자들을 죽였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까지 자살하게 했다.

'내부자 비밀모임'이라는 뜻의 '이너 서클'은 스탈린이 숙청을 완료한 시점인 1939년의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여 실존했던 스탈린의 개인영사기사의 일대기를 다룬 소련망명감독의 영화이다.주인공은 KGB 소속원으로서 스탈린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여, 부인을 KGB 수뇌에게 바치기도하나 결국은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그러나 스탈린은 그후에도 죽기 전까지 14년간 절대권력을 유지하여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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