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 움트는 생명을 알리는 대지의 숨결이다. 새로운 계절의 내음은 어디나 다름없을 터이지만남산의 봄내음은 그를 아는 사람에게는 여느 곳과 달리 다른 색깔로 안겨든다. 숱한 세월속에서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산이요, 자연속에 불국정토의 염원을 새긴 소망의 산이기때문이리라. 멀리서 바라보는 남산은 그저 무덤덤하다. 속모르고 혹여 저 산에 뭬 있으랴는 의구심마저 든다. 천보(千寶), 만보(萬寶)가 숨어 있는데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산에 들어 그 속살을 보지 않고는 산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것일까.
4월, 남산은 이미 봄의 한가운데 서 있다. 봄기운에 막 얼굴을 바꾼 남산에 오른다. 심란한 속세의 표정들이 금세 환해진다. 돌속에 숨어있는 부처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음일까. 점차마애불의 미소를 닮아간다. 곳곳에서 빼어난 절경들이 마주서자 무겁던 발길이 덩달아 가벼워진다. 팔경(八景). 없는듯 하면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석같은 산. 남산을 아는 이들은 골골을오르내리며 남산의 풍경들을 가슴 깊숙이 담아둔다.
탁자바위에서 보는 부석과 칠불암 신선암이 그렇고 냉골 암봉과 상사바위며 천룡사지 고원과 천룡바위가 봄볕에 영롱하다. 포석암반과 부엉더미가 그렇고 관음사 열반골, 삼릉의 노송숲 어디 하나 눈길을 빼앗기지 않는 곳이 없다. 용장사지 석탑에서 올려다 뵈는 고위산은 무너져내리듯 압도하는 기색이라곤 없다. 그저 부드러운 선의 연속이다. 포근하게 남산 품에 안긴 진달래는 고위산 하늘을 이고 더욱 투명하게 빛을 낸다. 사랑에 병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상사바위의남성적 아름다움이나 바위맥이 계곡을 막고 솟은 부엉더미의 절묘하고 장엄한 분위기는 남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용장사 절터에서 삼층석탑을 올려다 보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파란 하늘을 인 석탑이 사람의 마음을 하늘로 끌어올린다. 키낮은 소나무와 허연 등을 드러내고 웅크린 바위사이로 아득히높은 사왕천(四王天)과 도솔천이 눈을 멀게 한다.
"저 부처를 의심하지 말자 햇빛이 헤아리는 나뭇잎을 내 눈썹 사이 찡그리는 시냇물에 비춰 보면나무는 다시 싱싱해진다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다 꽃나무에 달린 열매가 내 몸을 지나면서 붉어졌지만 예정된 일, 언젠가 나도 팔 벌리고 머리통을 열매로 내놓으리라.경주 남산의 바위는 죄다 부처가 숨은 적멸보궁이다 어떤 부처는 이제까지 잘 놀다가 다시 돌 속으로 회귀하는 중이어서 손발이나 얼굴이 돌에 가깝다" (송재학의 시 마애불 )남산에서 마주하는 풍경들을 그저 아름답다는 탄성으로만 표현해내기에는 뭔가 부족할듯 싶다.만상이 돌속에 숨어 그 아름다움을 조금씩만 보여주기 때문일까. 아니면 밋밋한듯 하면서도 고아한 아름다움이 그냥 여기저기 배어 쉬 알아채지 못해서일까. 경주사람 송재중씨(신라중 교사)는남산의 아름다움을 팔경으로 노래했다. 남산이 좋아 수없이 남산을 오른 그는 그저 보고 마는 것보다 남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에게 전한다. 면면이 손금보듯 남산을 환히 알고 있는 그는 몇해전 남산의 이곳저곳을 꼼꼼이 기록한 남산지도를 제작,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있다.
용장골 수미산(須彌山)위 용장사지 삼층석탑에 기대어 해거름을 본다. 장엄무결(莊嚴無缺)이다. 도리천 구름위에 계신 여러 부처님의 나라가 붉게 물든 저녁놀에 살포시 떠있는듯 하다. 영산을 두루 비춘 비로자나광명. 성속이 하나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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