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는 크고 작은 사찰이 있었다. 현재까지 남산에서 발견된 각종 불상보다 그 수가 더 많다.이제는 대부분 흔적만 남은 옛 절터. 많은 절들이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고 그 잔해마저 희미해지는 동안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작은 공간에 이처럼 많은 사찰이 세워진 곳은 유래를 찾기 힘들다. 현재까지 알려진 옛 절터와 그 터 위에 세워진 현존사찰수만도 모두 1백27곳. 남산 40여 골짜기 가운데 용장골, 포석골, 삼릉골에는 각기 10개이상의절이 서기도 했다. 잡목속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주춧돌과 탑재, 와편에 신라천년의 영화가서럽다.
흙과 세월에 파묻힌 옛 사찰의 존재를 후대에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중의 하나가 바로 당간(幢竿)지주다. 절에 행사가 있을때 불보살의 공덕을 염원하고 악귀를 쫓기 위해 '당'이라는 깃발을 올렸다. 바로 당을 거는 깃대의 받침돌을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그많은 절마다 당간지주를 세웠지만 현재 남산에는 단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아 귀중한 유물이다. 보물 제909호 남간사지(南澗寺址) 당간지주. 남산 유일의 당간지주를 보기 위해서는 남산 서북쪽 장창골로 가야 한다.장창골 어귀에서 나정, 양산대를 지나 2백m가량 들어가면 오른편 논 속에 우뚝선 돌기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성왕릉과 강당못을 뒤로 하고 서있는 이 당간지주는 2개의 큰 화강석에 원형으로 구멍을 뚫은돌기둥이다. 높이 3.6m에 밑 너비 62.7cm, 두께가 38.2cm인 이 당간지주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게 다듬어 안정감이 있고 기둥 아래위로 관목을 가로질러 넣는 두 구멍을 뚫어 깃대를 세웠다.정상부의 십자형 간구(杆溝)는 특이하다. 경주일원의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없는 수법이다.통일신라 중기에 세운 이 당간지주는 돌기둥 윗부분과 바깥 모서리를 죽여 곡선으로 처리한 것외에 아무런 장식없이 소박하지만 웅장한 멋이 풍겨난다. 이 당간지주에서 문드미(양산대)뒷편의 남간사지까지는 약 5백m. 남간사는 해목령을 배경으로 신라 왕경을 내려다보며 세워진 부근의 많은절중에서도 큰 절로 알려져 있다. 현재 주춧돌과 탑재들이 인근 마을의 기둥밑에 깔리고 밭기슭으로 밀려나 절규모나 가람배치를 알 길이 없고 금, 은으로 수놓아 하늘높이 휘날리던 깃발을 품에 안았던 당간지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절터 두 곳의 우물터와 하수구는 신라시대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손꼽힌다.
미륵골에서 내려다 보면 남천을 사이에 두고 남산과 마주한 낭산(狼山)기슭에 망덕사지, 사천왕사지 당간지주가 보인다. 선덕여왕의 유언이 서려있는 사천왕사지 당간지주는 남간사지 당간지주에비해 크기가 작다. 높이 2.3m로 기둥마다 두개의 네모난 구멍과 한개의 둥근 구멍을 각각 뚫었다.인근 소나무숲에 남아있는 망덕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초기 세워진 것으로 높이 2.5m의 기둥에구멍을 내지않고 기둥안쪽 상부에 장방형의 홈만 낸 것이 특이하다. 이곳에서 낭산너머 동쪽으로1km남짓 들어가면 보문사지 당간지주와 연화문 당간지주가 너른 논 한가운데 외로이 서있다. 마치 섬 같다. 높이 3.8m의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남쪽 기둥 아래위 3곳에 관통하는 구멍을 뚫었지만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북쪽 기둥은 중간에 반쯤 막힌 구멍을 내 매우 희귀한 예로 손꼽힌다.진평왕릉 이 건너다 보이는 높이 1.5m의 작고 단아한 연화문 당간지주는 기둥 바깥면에 연꽃잎을양각해놓아 정교한 신라석공의 돌다루는 솜씨와 정성이 당간지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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