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금융100년(15)-대구은행(8)

83년 공사가 중단되면서 유포되기 시작한 대구시 수성구 수성동 신축본점 매각설은 당시 대구은행 경영이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 매각설은 근거없는것이 아니었다. 실제 당시경영진에서는 매각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영업수익이 적자로 곤두박질치면서 배당률이 공금리수준을 훨씬 밑도는 당시 여건상 증자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었으며 설사 완공이 되더라도 건물운영비조차 충당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따라 본점신축본부가 신축영선과로 격하됐으며 대우그룹에 매입의사를 타진, 대우측에서 현지실사를 하기도했다.

그러나 본부 차장회의를 개최, 직원 여론을 수렴한 결과 오비이락격으로 때마춰 터진 부도설로은행위상이 크게 실추된 상태에서 신축본점을 매각할 경우 공신력에 치명타를 맞게돼 매각해서는안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젊은 직원들은 본점이 완공되면 면모를 일신할 수 있고 대외공신력 또한 제고될것이 틀림없기때문에 정면돌파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와중에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매각설은 탐색만으로 끝났다.그러나 경영압박이 심해지자 신축부지 5천5백16평중 1천7백평을 토지개발공사에 매각했다. 매각부지에는 현재 경북체신청이 들어섰다. 또 현재 전산정보부가 들어서있는 본점동편 별관부지도 이때 토개공에 같이 매각했다가은행측이 재매입했다.

또 당시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대구동신로의 금싸라기땅 구대구소방서부지와 서울 안국동 직원합숙소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시절 은행경영을 맡았던 정달용행장은 부동산을 대거 매각한 주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역경제의 부침과 희비를 함께한 대구은행은 84년 국내경기가 사상 유례없는 활황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게된다.

84년2월 개최된 제27기 주총에서는 정달용행장이 퇴임하고 권태학전무가 제4대 행장으로 취임했다. 또 전무에는 이상경상무가 선임됐다. 새 경영진의 등장은 시련기를 벗어나 새로운 도약기로접어든 것과 궤를 같이한다.

85년3월에는 수권자본금을 5백억원으로 늘렸으며 4월에는 1백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 자본금을지방은행 최대규모인 3백50억원으로 늘려 대형은행으로 도약할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또 5월23일에는 숱한 어려움이 점철됐던 신축본점이 준공됐다. 79년 8월에 부지를 매입, 다음해 6월10일 첫 삽질을 한뒤 만5년만에 공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대지 3천8백18평, 연건평 8천9백7평, 지하2층 지상18층 규모로 당시 대구시내에서 가장 높은 초현대식 건물이었던 신축본점 공사에는 건축공사 88억원, 전기설비 22억원, 기계설비 25억원, 부대설비 7억원등 총1백42억원이 투입됐다.

또 신축본점은 일정규모 이상이면 서울업체에 맡기던 당시 건축관행을 과감히 탈피, 지역건설업체에 발주함으로써 지역사회 고용증가와 경기부양에 일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池國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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