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

새로운 민족문화 운동의 산실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 일명 '솟대마을'전통마을로 널리 알려진청학동 산자락에 자리잡은 배달민족성전 삼성궁은 대구에서 승용차로 3시간가량.구마고속도로에서 내서분기점으로 빠져나와 남해고속도로를 진입하면 이내 펼쳐지는 남도의 순결한 얼굴이 화사한 웃음으로 다가온다.

다시 남해고속도로에서 진교면을 거쳐 횡천방면으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청학동표지판. 여기서부터 삼성궁입구까지 넉넉잡아 1시간을 달려야한다.

그러나 골짜기마다 뿜어내는 그윽한 산내음과 시야를 상큼하게 하는 녹음들은 긴 여정의 무료함을 무던히도 달래준다.

산은 역시 지리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골짜기. 어쩜 이리 큰 산이 있어 우리는 옛적부터 질기디질긴 끈기를 지녀왔을 지도 모를 일.

산 허리에 채 못미치기전 하동댐과 또 하나의 수원용 댐을 거치면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른 좁다란 평지에 '삼성궁입구'란 표지가 반갑게 인사한다.

행정구역상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좁은 길목에는 벌써부터 경외심을 갖게하는 조짐들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돌틈사이 흐르는 계곡물. 입구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솟대들. 거칠은 오르막길이 잦은 숨가쁨과 휴식을 강요하길 20여분. 이내 긴 장대로 가로지른 입구가 보이고 그앞에 징이 덩그렇게 놓여져있다.이곳에서 징을 세번치면 긴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갓을 쓴 안내자가 나타난다. 마치 TV에서 보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모습으로.

삼성궁이란 한배임(桓因) 한배웅(桓雄) 한배검(檀君)등 삼성(三聖)과 우리나라를 건국한 태조. 각성씨의 시조및 나라를 빛낸 현인 무장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순례 참배지. 현재의 삼성궁은 이곳의 최고어른 한풀(大氣)선사가 87년부터 화전민이 버리고 간 폐허의 숲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굴러다니는 돌을 모으고 연못을 파는 작업끝에 이룬 해탈의 땅.

이보다 앞서 한풀선사의 스승 낙천선사가 일제탄압으로 소실된 구월산 삼성사에서 모셔온 삼성의위패가 인근 세밭평전에 모셔졌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토굴에서 모진 고행끝에 광명을 본 한풀선사는 수행을 위해 솟대를 쌓아올렸다. 이어 문하생들이몰려들어 솟대의 수는 점차 늘어났고 그 수는 이제 1천4백여기(基). 앞으로 쌓아올릴 솟대들이 3만여개라니 누대에 걸쳐 이뤄야할 방대한 작업이다.

화살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참배길. 신라복식모양의 제복을 입고서 참배를 서약해야만이 순례가허용된다. 종교상의 이유로 참배를 할 수 없다면 인근 찻집에서 머무르면 될 일. 또 참배를 거짓약속하고 구경만 해도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듯하다. 대나무로 이어진 안내길을 따라 나서면 수행을 위한 토굴이 보인다. 입구근처 5m가량을 빛이 들어와 볼 수 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암흑천지 무서움을 애써 참으며 살펴보면 토굴내 여러 갈래길이 나타난다. 이곳의 방은 모두 7개. 그러나 입구까지. 사람을 꽉 채운다면 3백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길고 긴 터널이다.이어 나타나는 초가집 세채. 수행자들이 수도나 일을 하면서 쉬는 임시거처이다. 현재 15명이 참가중인 삼성궁의 실제 거주지는 삼성궁 고개너머 있다하나 외부공개를 일체 금하고있어 어떤 모습인지 알 수가 없다.

오르막 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단군전이 있어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다. 이어 제일 높게 자리잡은 초가집. 천궁이다. 이화세계(理化世界)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삼성궁의 기본이념이 천궁안 벽에 걸려져있다.

천궁을 지나 나무정자에서 아래로 내다보는 정경이 광활하다.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솟대와 솟대사이 수줍게 얼굴을 내민 복사꽃. 정녕 봄이 아름다운 때임을 정자에서야 깨닫게된다. 나무정자에서는 신발을 벗어야만 풍경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같다. 산바람이 달래주는 발간지러움이한결 정취의 품격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양말까지 벗으면 더욱 좋겠지만.

솟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떠오르는 숱한 의문들. 시멘트나 레미콘 같은 중간접착재료없이그냥 쌓아올린 솟대. 그러나 모진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1기의 솟대를 쌓는데 얼마나 많은돌들이 들었을까. 대체 이돌들은 어디서 가져온 걸까? 이돌은 현지에서 조달한다. 땅을 파면 이내크고 작은 돌들이 나오고 그돌로 솟대를 쌓으면 그만이고 돌을 파낸 자리는 작은 연못이 돼버린다.

장대한 솟대들. 민족의 값진 삶을 기원하기위해 쌓아지는 솟대. 수백년 후 3만여 솟대가 위풍당당하게 솟구칠 그날까지 솟대마을의 솟대쌓기는 계속된다.

〈柳承完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