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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포정해우

예술은 기능이나 이성으로 하는 논리적인 작업이 아니다. 감성과, 정신성이 작품속에 응축되어야만 비로소 예술품으로 승화된다. 서예는 바로 이러한 동양예술정신의 결정체다.장자는 양생주(養生主)의 포정해우(疱丁解牛)에서 기와도를 비유한 예술정신을 말하고 있다. 요리를 잘하는 포정이 양혜왕을 위해 소를 잡게 되었다. 온몸으로 춤추는 듯 익숙한 솜씨로 뼈와 살을 발라냈다. 그 소리는 탕임금 때의 명곡인 상럼의 무악에도 들어맞았다. 양혜왕은 그것을 보고감탄하며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포정은 대답했다. "처음 소를 대할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으나 이제는 소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감각과 지각이멈춘 채 칼을 들고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를 따라가면 살이나 뼈를 티끌만큼도 다친 일이 없습니다. 신은 기술이 아니고 도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둘레를 살피고 득의만면한 채 한없는 즐거움을 맛보며 칼을 씻어 넣었다.

포정이 말한 도는 기술 자체의 효용보다는 기술을 통해 성취한 예술성의 효용이다.포정이 '요즘은 정신으로 소를 대한다'고 한 말은 손과 마음이 일치된 심수상응의 경지에 도달하였다는 뜻이리라. 기에 얽매이는 바가 없으면 정신적 유희를 얻게 되고 그렇게 되었을때 비로소정신은 기술로부터 해방되어 자유감과 충만감을 누리게 된다. 이는 바로 서예인들이 희망하는 정신적 경지이다.

흔히 붓을 잡고 제대로 세우는데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기간이 포정이 소가 작은 덩어리로 보였다는 기간과 비슷하다고 보면 소가 전혀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때는 언제쯤일까?〈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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