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

내 삶의 원칙은 음미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웠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행한 최후의 변론에서 '음미되지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인류에게 유언처럼 남겼다. 살아있음의 행복, 일을 이룸의 기쁨, 성장과 변화의 만족뿐 아니라 슬픔과 고뇌조차도 그 마땅한 폭과 깊이에서 음미하는 경우에만 삶은 마땅히 살아갈만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뜻이다.

-날카로운 자의식 필요

음미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음식을 맛보려면 예민한 혀가 필요하듯이 삶을 느끼려면 날카로운 자의식이 필요하다. 물론 훈련이 요구되는 일이다. 나는 매일 한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이것을 연습한다. 커피 마시기 전에 나는 방문을 걸어잠근다. 음미하는 일에 순수하게 집중하기 위해서다. 먼저 커피가 담긴 잔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런 다음 향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미각세포를 긴장시키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반모금 정도를 마셔서 구강을 충분히 적신다. 나머지도 천천히 마시되 마실 때마다 입안에서 지체시킨다는 느낌, 그리고 혀에 율동을 준다는 기분을 가지려 애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마시거나 흔히 자판기 앞에서 무슨 약이나 먹듯이 부리나케 입안에 털어넣거나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커피 한잔을 마신 것이다. 별스럽게 마신다고 위장 안에 들어가서 특별한성분이 덧붙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성분만을 따지고 효능만을 분석하는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커피를 마시는 두가지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보면 한잔의 커피를 음미하며 마시는 것과 약처럼 입안에 털어넣고 식도로 넘기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지닌다. 음미하는 것에서 우리는 마심을 살아내는 것이지만 단지 목구멍에 부어넣는 것에서는 우리는 마심을 단지 해치우는 것이다.소크라테스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던 것은 삶을 마치 무슨 해치워야할 과정이기나 하듯이 여기는 사람들의 삶을 말한다. 부어넣거나 음미하며 마시거나 커피는 위장으로 내려가서 같은 성분으로 분해되는 것 같이, 스쳐지나듯 해치우듯 살아가거나 음미하며 살아가거나 어차피 무덤 안에서한줌의 흙이 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가치있는 삶'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남은 커피는 내방식대로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그에 해당되는 양의 커피라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마셔버렸지만아직도 꽤 많은 양이 남아있다고 믿고싶다. 이제 와서 나는 덧없이 마셔버린, 때로 억울하게 엎질러버린 그 소중한 커피들을 아까워 한다. 의미 없고 덧없는 것들을 좇고, 허망한 환상에 매달리며살았던 것이다. 나는 덜 화내고 덜 분노하고 덜 아파하는 만큼 더 느끼고 더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맛보려 애써야 했다. 하지만 남은 커피만은 내 방식대로 마시겠다. 비록 작더라도 내 잔으로마시겠다는 말이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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