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자구요" 한때 장안의 지가를 올리며 파죽지세로 팔려나갔던 소설 '종이시계'(앤 타일러)의 원래 제목은 '숨쉬기 연습'이다. 임신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숨쉬기 연습을 권한다. 그러자 아직 십대의 철부지 며느리는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숨쉬기 연습이라뇨. 도대체 내가 이 나이에 숨쉬는 법도 모른다는 거예요?'
아마 당신에게도 누군가가 '일하고 사랑하기 전에 숨쉬기부터 연습하라'고 충고하면 이 며느리처럼 답하리라. 숨쉬는 일에 새삼 연습이라니, 이 무슨 원숭이 하품하는 소리냐.하지만 숨쉬는 연습이라는 이 말에는 깊은 역설의 진리가 숨어있다. 숨쉰다고 모두 숨쉬는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며 살아간다고 다 삶의 비법들을 터득해있는 것도 아니다. 일상을 이어간다는그 어마어마한 사업도 이토록 터무니없이 작은 일, 숨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manna)처럼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거기에서도 잘해내려면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과 훈련으로 익숙해진 삶,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레테의 삶'이라고 불렀다. 곧 숨쉬기를 잘 하듯 삶을 잘 사는 것을 말한다. 이 아레테의 방식을 '종이시계'의 시어머니는 살아온 세월 속에서 묵히고 삭힌 지혜로써 그 철없는 며느리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온갖 일에도 다 교습이라는 게 있잖니. 피아노 연주나 타이핑 같은 거 말이야…. 차를 몰기 전에는 정부가 인가하는 도로 연수를 해야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운전 같은 건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남편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새로 태어난 한명의 인간을 키우는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은 컴퓨터에 통달하거나 능숙하게 운전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잘 사는 삶'은 '잘 쉬는 숨'에서 출발해야 한다. 숨쉬기 연습이란 가령 한송이 꽃의향기를 남김없이 들이마시도록 애써보는 것이다. 물론 들이마셔야 하는 것은 싱그러운 신록과 꽃의 향기뿐이 아니다. 시장바닥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생선을 파는 저 아낙네의 이마에 밴 땀냄새까지 들이마셔야 한다.
삶의 모든 향기 마셔야
인간의 향기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더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들과 삶의 숨결을 같이 나누는 것, 그런 숨쉬기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낙담 속의 장탄식,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 턱턱 막히는 숨, 절망과 슬픔 속에서 길게 몰아쉬는 한숨, 이런 것들은 예기치 않은 불행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것들이 모두 서툰 숨쉬기, 고르지 못한 호흡의 결과들이다.겉보기의 화려함 때문에 마치 삶의 챔피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숨쉬기 연습따위는그들과 영원히 상관없을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이미 삶의 비법을 마스터한 역사무대의 스타들일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자주 삶의 작은 외풍 한자락에도 바람꺼진풍선처럼 초라하게 내팽개쳐지는 광경을 보곤한다. 뭐니뭐니해도 숨쉬기라는 기본기에 소홀했던탓이다. 그들은 권력, 재산, 명예에만 혈안이 되어 우리가 길 모퉁이에서 흔하게 만나는 싱그러운웃음, 가로수의 향기, 맑은 햇빛,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을 호흡할 줄 모른다. 숨쉬고 느끼고음미하는 법을 훈련하기 전에 소유하고 지배하며 군림하는 방식부터 먼저 배워버렸기 때문이다.잘산다는 것은 잘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넘어지고 비틀거리더라도 고른 호흡으로 삶의 모든 향기를 놓치지 않고 마셔내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훈련없이 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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