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사상 2번째로 실시된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인민혁명당(MPRP)의나차긴 바가반디(47) 당선자는 옛 소련에서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능란한 말솜씨와유연한 처세로 유목민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자그마한 몸집에 연필로 그린듯한 콧수염을 기른 그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기를 좋아하며 다소 무뚝뚝한 성격이라는 평가와는 달리 능란한 언변으로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민중의 대변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웃는 것을 꺼리는 다소 딱딱한 성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복지를 살피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데다 젊고 당당하기 때문에 몽골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 서방 외교 소식통들의 평가다.
바가반디가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공산당의 후신인 MPRP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압도적인 지지로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공산당 계열 정치인들과는 달리 유연한 처세로 '골수 공산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인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50년 몽골 서부 자브한주의 양치기 가정에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곧바로 레닌그라드에 위치한 한 공과대학에 유학했으며 72년 귀국해 울란 바토르의 맥주공장에서 일했다. 그는그러나 72년 다시 소련의 오데사로 두번째 유학길에 올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왔다.지난 80년 MPRP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그는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몽골중부 투브주 당위원회 간부직에 오르면서 정치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3번째로 소련에 유학해 모스크바 사회과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87년부터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92년 MPRP 부총재에 임명됐다.
소련 붕괴 직후인 92년 몽골에서 처음 실시된 다당제 총선에서 의회에 진출, 96년까지 MPRP 원내총무로 활약했으며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 올해초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행운을잡았다.
(울란바토르 AFP 연합)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