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금융100년(18)-대구은행(11)

"학맥갈등... 행장퇴진 불러"

92년 주총사태는 대구은행 30년사 최대의 인사파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92년 2월 26일 제35기 정기주총날. 임기가 만료됐으나 재선임이 확실한 것으로 점쳐지던 강경헌전무이사(현 영남종금 사장)는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로비에 대기하고 있었다.

정기주총에서 임원 개선이 발표되지만 사전에 재선임 여부를 본인에게 통보하는게 상례. 강전무는 이상경 당시 행장으로부터 퇴진 통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재선임을 믿고 있었다.그러나 정기총회에서 강전무의 이름은 결국 불려지지 않았다. 전격 퇴임 결정. 그는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강전무의 퇴진은 대구은행에 학맥 갈등이라는 커다란 불씨를 불렀다. 공교롭게도 강전무는 행내사무직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상고 출신인데 반해 이행장은 경북고 출신이었다. 주총에서 선임된 이사를 포함해 10명의 임원중 5명이 경북고 출신이라는 점이 불씨의 도화선이 됐다.노조가 '독선 경영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이행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은행바깥에서는 대구상고 비상동창회가 소집되는등 일파만파를 불렀다.

결국 이행장이 노조에 대해 사과성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사태는 수습국면으로 가는듯 했지만 한달여 뒤인 4월2일 이행장은 돌연 사퇴하고 말았다. 이행장의 사퇴는 은행감독원의 외압에따른 문책성 인사로 비쳐지면서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평소 업무 추진에 소신파로 알려진 이행장의 재무부와의 껄끄러웠던 관계가 강전무 전격 퇴진 파동을 기화로 문책성 외압인사로 작용했다는 설이 나돌며 '관치(官治)금융'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고조됐다.

이행장의 퇴임으로 대구은행은 서덕규 전무의 은행장 대행체제로 돌입했지만 후임 행장 외부영입설이 나돌면서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노조의 서명과 부점장급 1백여명의 모임이 잇따르는등파문은 식을 줄 몰랐다.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6월12일 임시주총에서 홍희흠 외환은행 전무가 제6대 대구은행장에 선임됐다. 홍씨는 대구은행 최초의 외부 출신행장이었지만 대구은행 사태가 장기화되어서는 안된다는지역 여론이 무르익을 무렵 행장에 선임됨으로써 비교적 큰 반발을 피해갈 수 있었다.홍행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친화력으로 행내의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는 한편 지역 밀착형 혁신경영을 통해 대구은행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