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극장가

신도, 신성, 미도, 남도, 오스카, 카네기…. 추억 속을 가로지르는 이름들을 기억하십니까? 이백원으로 해결했던 '문화교실'. 대학생이 되면 꼭 한번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심야상영'. 항상 가까이 있어 좋았던 '변두리 극장'. 저렴한 관람료 덕에 더욱 가까웠던 '소극장'. 80년대 젊은이들이문화에 대한 갈증을 풀었던 이름들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태에 밀려 하나 둘씩 설 자리를잃어가고 있는 공간들. 뉴신도 노래연습장, 남도 당구장…. 새로 내걸린 간판들이 그나마 과거의기억을 조금씩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가 잘 팔리던 때가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영화보러 가던 시절. 80년대 중반, 대구에는 극장이 50개도 넘었다. 대부분 작은 스크린으로 재개봉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들. '매주 토요일 심야극장' 자랑스럽게 광고판이 나붙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싸게 보기 위한 약 한달간의 기다림. 80년대 청춘들은 그런 기다림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춥고 허름했던 학교앞 동시 상영관에서 화면엔 비가 내렸고 가끔씩 구름도 꼈었지…" 누군가 노래로 추억했듯이.

90년대의 상황은 다르다. 더이상 '춥고 허름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은 소극장들도 새 음향기기를 들여오고 냉방장치를 갖추고 있다. 붓으로 그리던 영화간판도 컴퓨터 대형 실사출력기가 뽑아낸다. 비디오기계의 보급으로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들은 비디오대여점에서 소비된다. 재개봉을 기다릴 필요도, 돈 걱정하는 사람도 없다. 성인영화를 보고나면 왠지 불이 켜지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았던 쑥스러움도 밀실같은 비디오방에서 잊혀져 간다. 게다가 소극장은 청소년 탈선의 온상으로 지목받는다. 불량청소년들이 불량한 영화를 보며 흡연, 본드를 일삼고 패싸움까지 심심찮게 벌이는 곳. 현재 소극장에 대한 인식이다.

영화를 보러 굳이 '시내'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있었다. 각 구마다 극장 없는 곳이 없었던시절. 한때 중구를 제외하고도 24개의 극장이 대구에서 성업했다. 그러나 오늘 남은 것은 남구의신라·서라벌, 서구의 황제 등 고작 3개관. 신성·신도·칠성·코리아·허리우드·롯데·영화 극장이 맹위를 떨치던 북구에서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소극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82년 푸른극장(현 동성아트홀)을 시작으로 대구시내 곳곳에 생겨난 소극장이 지난 89년에는 모두 34개관에 달했다. 아직 '극장'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11개.소극장 중에서도 위치가 좋아 '잘 나가던'시네마 준은 폐업. 동성아트홀, 그랑프리, 가고파, 명화극장은 비디오상영관으로 전업. 지역에서 유일하다시피한 아트홀로 이름을 날렸던 무지개 극장은95년 간판을 내렸다. 자유2관으로 거듭난 지금은 1관의 재개봉관 역할에 급급한 실정.이제 영화를 보려면 '시내'로 나가야 한다. 현재 영업중인 21개의 극장가운데 18개가 중구 동성로일대에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다. 재개봉관다운 극장을 찾기도 어렵다. 자유2관, 신라, 서라벌, 뉴스타, 코스모스 정도.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다. '싫어도' 싸구려 에로영화를 '3프로 동시상영'하고있는 소극장들은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다.

올해 들어서 벌써 2개 극장이 폐관절차를 밟았다.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나머지 소극장주들도 이제 회생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신라, 서라벌, 뉴스타, 코스모스 등 4개관 외에는 전부 남의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영세 극장들. 임대료 내기도 빠듯하다.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태도에는 비장감마저 엿보인다. 당장이라도 폐관하고 싶지만 건물주에게 지불해야할 극장시설 철거비용(8백여만원)이 없어 차일피일 하는 곳마저 있다. 지금 이시간에도 소극장 안에서는 고작2~3명의 관객을 위해 영사기가 돌아간다. 쉽게 버리기에는 너무나 비싼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공간들. 그나마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기록영화 속에서만 남지 않을까.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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