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탈북 일가족 재상봉 표정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마음 푹 놓으세요"

긴장과 초조, 불안감으로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탈북 4백67일만에 서울에 안착한 어머니주영희씨(49)와 두 동생을 얼싸안은 순간 홍진희씨(28)가 그간 겪어왔던 마음고생은 눈녹듯 사라졌다.

가족을 놔둔 채 북한을 탈출했기 때문에 늘상 죄책감에 시달려오던 홍씨는 북한당국의 감시와 핍박속에 고초를 겪어야 했던 어머니와 동생들을 4년만에 자유의 땅에서 극적으로 재상봉하는 꿈결같은 순간을 맞은 것이다.

이날 오후 하교길에 정부 당국자로부터 "공항으로 급히 가야할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홍씨는 홍콩에 체류하던 가족들이 드디어 서울에 온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공항 도착 즉시 승용차에서 쏜살같이 내려 청사안에 들어선 홍씨는 이미 기자회견을 갖고 있던어머니 일행을 보고는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 않는 듯 한동안 가족들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봤다. 이윽고 어머니의 미소를 확인하고는 와락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들어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이려던 주씨도 이때만큼은 재회의 감격에 북받친듯 큰 아들의 얼굴을 말없이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적셨다.

"잘 오셨다"는 말만 거듭하는 아들에게 주씨는 "다시는 우리 가족이 헤어지지 말고 끝까지 함께살자"며 세 자녀를 힘주어 끌어 안았다.

순간 주씨의 뇌리에는 큰아들의 탈북직후 직장에서 쫓겨나 급기야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산골짜기로 추방된 이후의 삶이 새삼스레 스쳐지나갔다.

지난 93년 3월 큰아들이 중국으로 탈출한 직후 남은 가족들에 대한 북한 공안당국의 감시와 박해는 예견됐던 것이기는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도 '생지옥'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하늘아래 첫동네'로 불리던 함남 허천군 상남리 산골에서 이들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채마굿간이나 다름없는 방에서 혹한을 견디면서 1년내내 하루 세끼를 옥수수로 연명해야 했다.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공항을 나서는 홍씨는 "열심히 학문을 닦아 고생이 많으셨던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며 환한 웃음속에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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