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차대전 종전직후 일본국왕 퇴위 고려

2차대전 종전직후 일본국왕의 전쟁책임과 관련된 퇴위문제 등 일본 궁내정치의 비화에 대한 증언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2일 일본국회도서관에서 공개됐다.

당시 내대신(內大臣)으로서 쇼와(昭和)국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정치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키토 고이치(木戶幸一·77년 사망)씨가 남긴 이 증언에는 지난 67년2월부터 5월사이 녹음돼30년후 공개하기로 관계자들과 약속했었다.

이 증언에 의하면 45년12월 키토씨는 전범으로서 형무소에 들어가기 직전 일본 국왕과 만나 "퇴위는 시기적으로 지금이 아니다. 일본이 평화국가로서 세계의 일원으로 복귀했을 때가 그 시기이다. 아무래도 책임을 지려고 한다면 일본을 그곳까지 끌고 가야할 책임이 왕에게 있으므로 그렇게 원했다"고 밝혀졌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이 계속되고 있을 때 한 대신이 면회를 와서 "퇴위 문제에 대해서 왕이 직접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상담을 한적이 있다고 밝혀 쇼와왕은 당시에 퇴위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도 밝혀졌다.

41년9월6일 미국·영국 등을 상대로 개전을 결정한 소위 어전회의에 대해 개전회피는 할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키토씨는 "그 단계에서는 할 수 없었다. 만일 이때 중단하라고 주장한다면 어떤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라고 말해 일종의 내란상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45년8월 포츠담선언 수락을 둘러싸고 키토씨는 수락에 반대하는 군부의 반발에 위기감을 느꼈다.종전 직전 어전회의에서 "도죠총리대신은 사표를 내는것이 당연했었다. 그러나 그는 '성단(聖斷·국왕의 결단)'이라며 당시 일본내각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결정했었다"고 증언하고 도죠는 삼단논법적인 단순한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증언중에는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이 전쟁 종결에 도움이 됐다고 말하고 있어 키토씨는어디까지나 관료정치가로 민중적인 감각은 결여돼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전쟁의 비참한 결과를 어느정도 생각했는지 방관자적인 인상도 남는다"고 말했다.

이번에 밝혀진 자료로는 녹음록 2권과 녹음 테이프 18개(약 16시간)를 공개하고 있다.〈도쿄·朴淳國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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