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6월항쟁 10돌

"이종오 〈계명대교수·사회학〉"

지난주에는 전국각지에서 6월항쟁 10주년을 맞이하여 각종 학술행사와 토론모임이 있었다. 특히97년 대선과 퇴진의 압력까지 받고있는 김영삼정권을 염두에 두어서 그런지 금년의 이런 모임속에는 예년과 다른 긴장감까지 엿보인다.

87년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6월항쟁 이후 10년,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였다. 무엇보다도 전·노 두 전직대통령이 구속, 수감되는 사태를 상상이라도 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는데 이것이 현실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17년만에 광주사태는 광주민중항쟁이 되어 공식적으로 명예스러운 위치를 역사와 현실속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개혁의 動力 소진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또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도 많다. 97년들어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일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한보사태 같은 것이 그러한 예다.

낡은 정경유착의 고리, 고질적인 관치금융의 병폐, 그리고 50년대 가짜 이강석사건 이래 대통령친인척의 비리가 고스란히 다시 드러나는 이 사건을 보면 한국사회는 10년 아니라 40년 전과는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반문케한다.

과거의 이념적 편향과 행동방식을 고집하는 일부 학생운동을 볼때에도 그러하다. 시간과 환경이그렇게 바뀌었는데도 과거에서 한치도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보수성이 가장 변화에 민감한 학생층에서 그렇게 완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답답하다.

그러나 87년과 97년의 한국사회가 다른 가장 큰 측면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이제 더이상 변화와발전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이것이 과거의 타성이 온존될 뿐 아니라 이제는 사라졌다고 여겨왔던 과거의 망령까지 사회 도처에서 꾸역꾸역 되살아나는 현상을낳고 있는 것이다. 지방화도 세계화도 사실 이렇게 맥빠진 사회와 허탈감에 차 있는 사회구성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이룰수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김영삼 정부의 공과는 이제 곧 역사속에서 평가될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볼때에 이 정부가 역사에 지는 가장 큰 빚은 200억달러의 국제수지적자라기 보다는 그간의 부패와 실정을 통하여 한국사회에서 변화와 개혁의 동력을 소진시켰다는 데에 있다.

*침체벗고 새도약을

이제 한국사회는 다시 한번 이러한 침체와 무기력을 벗어나는 도약을 준비하여야겠다. 그런 면에서 97년의 대선은 다시 한번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성과가 보장된 기회라기보다는 실패하여 더욱 더 큰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는 위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유럽의 정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정치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 한국사회를 불안과 무기력에서 불러 일으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정치는답답한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보면 답답함이 극에 달했을 때 흔히 새로움이 예비되고 있었다. 이제 6월항쟁 10주년을 맞이하여 이렇게 좌절감과 무기력이 극에 달하고 있으니 이제 다시 새로운 운동과정치가 태어날 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민주화구호 되새겨야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새로움이란 흔히 기상천외의 기발함에 있다기보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평범하나 당연한 사항을 재발견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데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새로운 조류, 새로운 세대의 물결속에 묻혀 있었던 당연하고 평범한 한국사회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 면에서 87년의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간 많은 부분에서 잊혀져 있었던 민주화의 과제를 이제 다시 한번 불러일으켜야 겠다. 민주화는 지나간 시대의 구호도 아니고 이미 완결된 역사적 과제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추구되어야 하고 승리해야 하는 오늘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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