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

"이렇게 살자구요" 얼굴이라는 텍스트의 독해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면 그가 정녕 철학자인지 의심해도 좋다. 참과 거짓이 어떻게 교차하며 하나의 표정을 만들고 지혜와 음모가 어떻게 갈등하며 한 사람의 외모를이루는지 살피는 일은 지성만으로 가능한게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영감과 통찰이 필요하다.저 위대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등도 학문으로 대성하기 전에 먼저 얼굴읽기에서 탁월한 경지에 오른 현자들이었다. 그들은 괴나리 봇짐 싸들고 스승찾아 출향관 했다고 아무나 무턱대고 제자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먼저 얼굴읽기로 됨됨이를 살펴서 가부를 결정했던 것이다.그러니 합격하여 문하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들보다 불가로 판정나 아예 문전에서 퇴박맞은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영감과 통찰 필요

성주에서 젊은 청년 정구와 정인홍이 도산서원으로 퇴계를 찾아왔다. 제자로 삼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퇴계는 정구만 제자로 받아들이고 정인홍은 문하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이유는 간단했다. 정인홍의 얼굴을 살펴읽으니 제자 삼기에 합당치않다는 것이었다.이제는 시절이 바뀌어 대 성자도 없고 그 문하에 거두어지길 간청할 일도 없으니 다행인가. 무심한 저 장삼이사의 눈길은 그저 교언영색으로 속아넘기기만 하면 그만인가. 아직도 도처에 우리의얼굴을 투명하게 읽어내는 현자의 밝은 눈들이 있음을 다 무시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의얼굴은 먼저 '읽혀야'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어야'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살아간다는 것은 타고난 윤곽을 재료삼아 자기의 진짜 얼굴을 만들어 가는 길고 지난한 조탁의과정이다. 결국 각자는 살아간만큼씩의 얼굴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니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정직한 유언은 가령 이런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면서 만들어낸 얼굴이니 그것의 미추, 성속은 그대들이 판단하라. "사십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진한 발언이다. 인간은 이십대 아니 심지어 십대에서부터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책임질 부분 찾아내야

내 철학공부는 늘 나의 얼굴읽기에서 시작된다. 밤사이에 게릴라처럼 덮치는 잔주름이나 새치따위는 내 걱정거리가 아니다. 속절없이 스러져가는 젊음이야

괴롭고 가슴 아프지만 그것은 어차피 내 의지로써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답하고 책임져야하는 부분들을 찾아내려 한다. 저 고집스럽게 닫힌 입술은 나도 모르게 학생들에게내뱉은 권위적인 언어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저 그늘진 눈빛은 좌절된 내 탐욕이 남긴 흔적들이리라. 아무개에게 품었던 지독한 증오, 혼자서 꾸미던 음모, 한번의 은밀한 위선등이 내 얼굴 어느구석에 어떤 그림자로 남아있는지 찾아내려 애쓴다. 나는 이 읽기의 결론이 우울한 것들일수록더 집요하게 밝고 아름다운 얼굴로 남기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 내가 곧 서둘러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지금 단호히 멈추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까지 피하고 싶은 것은 아침마다 보던 거울에서 어느날 문득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 '당신 누구지'하고 묻게되는 일이다. 대신 나는 끝까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얼굴과 만나고 싶다."그래 좋아. 됐다구"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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