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인 논단

"이태규 한국은행대구지점 부지점장"

이달 초 '금융개혁위원회'가 금융기관 진입 자유화와 퇴출의 원활화,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제도개편, 금융시장 정보의 효율성 제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2차 보고서를 김영삼 대통령에게보고하였다. 이러한 금융개혁안은 그간 금융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보호'때문에 '낙후와 비능률'의 대명사로 여겨왔던 금융산업을 대수술한다는 의미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것 같다.그러나 유독 금융감독제도개편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앙은행의 은행감독권 존속여부를 놓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고, 언론 학계 등에서는 이에 대해 해묵은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데 안타깝다.

물론 어떤 제도나 정책의 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 입장에서는 어느정도의 집단이기적인 사고가가미될 수 있겠으나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와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필자는 다음같은 이유에서 중앙은행의 은행감독기능이 반드시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첫째, 은행감독업무는 중앙은행 고유기능인 통화신용정책의 출발점이다. 중앙은행은 한나라의 돈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관이다. 흔히들 국민경제에서 돈의 기능을 인체의 피에 비유한다. 인체의 피가 혈관을 통해 흐르듯이 돈은 금융기관을 통해 경제 전반에 순환되고 있다. 인체에 아무리 많은 피가 있어도 핏줄에 막힘이나 끊어짐이 있는 경우 원활한 혈액순환을 기대할 수없듯이 통화신용정책도 돈 흐름의 핏줄과 같은 금융기관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즉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돈의 파급경로인 은행의 경영상태와 동향을 파악하는 은행감독업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에 어떤 형태로든지 은행감독권을 부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미국에서도 중앙은행(FRB), 연방은행감독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등으로 다양화된은행감독기관을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제기되었으나 그린스판연방은행 총재가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개별은행에 대한 매일의 업무상태와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므로 은행감독권이 없는 중앙은행은 사실상 그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강력히 반대한 결과 무산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음으로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중앙은행의 은행감독기능은 존속되어야 한다. 정책이나 기능의통합에 따른 독주와 권한의 남용문제는 특히 금융분야의 경우 과거 크고 작은 금융부조리에서 볼수 있듯이 관치 또는 견제없는 감독 독주에 따른 부작용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심각하다.

물론 중앙은행의 경우도 독립된 통화신용정책과 은행감독권을 동시에 보유하는 경우 권력집중화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으나 중앙은행은 권력기관이 아니며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의 권력집중화 또는 관치금융 때문에 문제가 제기된 사례는 아직 없다.

셋째, 중앙은행의 독립과 기능강화에 부합하는 수단으로 은행감독기능 수행은 필수적이다. 중앙은행 독립의 최대 명제는 정치논리로부터 고리를 끊는 것이다. 즉 행정부는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전한 신용질서유지와 안정적인 물가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IMF의 스탠리 피셔이사는 "독립된 중앙은행만이 인플레이션에 관한 근시안적인 편견을 극복하고시장경제에 입각한 금리 조정이 가능하다"하였다. 은행등 금융기관이 중앙은행 정책과는 무관하게 정부 산하기관인 금융감독기관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성도,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무의미한 하나의 구호에 그칠 것이다.

결국 중앙은행의 은행감독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중앙은행제도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를 양보하거나 협상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