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튜디오가 어디죠?'
길을 알려준 사람은 삼덕 천주교회 뒷편이라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찾아도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30여분을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며 묻고 또물어 겨우 입구를 찾았다. 타박타박 나무계단을 올라가는데 3층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The music makes me dance-' 그런데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흑인 여가수 셜리 혼이 아니다. 프리마 돈나는 젠센 트리플렉스스피커. 웨스턴 일렉트릭 91 앰프의 지휘를 받아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그사람이 가까이 와있는 걸 알아…. 내가 춤추고 싶은 음악은 오직 하나…' 젠센은 이 대목에서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엔젤 스튜디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빈티지(vintage - 오래 되어 값진, 고급스러운)오디오를 취급하는 곳이다. 재래식 문짝처럼 생긴 엔클로져 속에 40년대 산 일렉트로보이스 죠지안 400스피커가 들어있고 크고 작은 진공관이 빛을발하는 구식 앰프. 바닥에는 탄노이 실버, 알텍 604우퍼가 뒹굴고 있는 곳.'스튜디오'라는 다소 생경한 이름이 붙은 것은 주인 조행선씨(57)가 부업으로 레코딩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전국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올드 명기만을 고집하는 엔젤 스튜디오를 잘 알고 있다. 왜 하필 빈티지 오디오인가?
알고보니 30분을 투자해 엔젤 스튜디오를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첨단을보증하는 시대. 과학의 전능함에 중독된 사람들이 CD와 트랜지스터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진공관과 아날로그로 돌아오는 데 30년이 걸리는경우도 있다. 조행선씨는 그 시간을 "소리에 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귀를만족시키지 못하는 음향기기를 바꾸고 또 바꾸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결국에는 1930~40년대의 올드 명기들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엔젤 스튜디오는 30년이란 시간을 굳이 단축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애써 광고하지 않아도 진정 음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진공관의 노란 불빛을 찾아 돌아올 것을 알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간판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CD를 필두로 디지털 음원과 음향기기들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섣불리 아날로그의 종말을 예고했었다. 여전히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 마니아들은 골동품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만족스러운 오디오로서 빈티지를 찾고있다. 디지털 소스가 단속적으로 보내오는 차가운음색이 아닌 LP레코드의 따스하고 현실적인 소리. 적은 출력으로도 풍부한 음감을 구현하는 구식스피커의효율성. 단순히 오래 됐다고 해서 빈티지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전원을 켜는것이 아니라 불을 지펴야 하는 진공관 앰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귀로도 색깔을 볼 수있다. 명기에는 현대의 대량복제기술이 흉내 낼 수없는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상업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최고'만을추구했던 명인들은 사업에선 속속 실패했다. 현재는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피커 업체 JBL의 창시자 제임스 B 랜싱은 사업실패로 스스로 목숨을끊었다.
근래 생산되고 있는 오디오의 주종은 여전히 디지털 콤포넌트다. 그러나 첨단기기들이 가진 화려함과 기능성의 한계에 부닥친 오디오 팬들에 의해 아날로그 오디오 시장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전환시켜주는 D-A컨버터를 채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최근 제품인 캐리 805 앰프는 진공관을 전격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터 SA 5000은 진공관과트랜지스터를 혼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그러나 빈티지에 비하면 아직 어림없다는 평가다. PC통신을 드나드는 젊은 마니아들까지도 올드 명기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그들도 언젠가는 먼길을 돌아 엔젤 스튜디오 같은 곳을 찾게 될 것이다.
웨스턴 일렉트릭 124·142·25B, 마란쯔 1·7, 탄노이 코너 GRF, 일렉트로보이스 조지안 400,로다 TP1…. 모두 엔젤 스튜디오의 주인공들. 명성이 높은 만큼 빈티지의 자존심은 강하다. 그저함부로 짜맞추어서는 제대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짝을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탄노이 스피커와 마란쯔 앰프는현악기의 소리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성악을 듣는 데는 젠센 스피커와 웨스턴 일렉트릭 앰프가 제격. 알텍 스피커는 재즈에 강하고 일렉트로보이스는 모든 장르의음악에 비교적 무난하다. 조행선씨는 "좋은 오디오란 결국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음색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안성맞춤'은 없다고. 30분이 걸리든 30년이 되든 스스로 원하는 소리를 찾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간판없는 엔젤 스튜디오(423-0927)는 조용하게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그 긴 기다림이 여유롭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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