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처음부터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울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당초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하려는 의사가 없었으나 이후 좌우 대립과 미·소간 냉전구도의 심화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격히 변하는 바람에 분단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최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기광서(奇光舒·33)씨는 자신의 학위논문 '1945-47년 북한에서의 정치체제 수립과 소련의 역할'에서 "당초 소련은공산정권을 수립해야겠다는 의사도 없었으며 단지 소련의 안보와 국익을 위협하지 않을 중립적인연립정권이 한반도에 세워지기만해도 다행이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기씨의 견해는 소련이 의도적으로 38선 이북을 점령한후 김일성을 내세워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했다는 기존 학계의 다수 이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기씨는 45년 소련의 대내외 정책의 기조를 파악하는 지표가 되는 관영언론인 이즈베스티야와 프라우다 등에 한반도에 대한 기사가 거의 실리지 않을 정도로 소련은 한반도에 대해 무관심했으며소련은 당초 "민족 진영의 지도자인 조만식, 김구, 이승만 등이 공산주의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이들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특히 소련정부는조만식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서 끈질긴 설득을 벌였으나 조만식등 민족 지도자들이완강히 반공 입장을 굽히지 않자 그 대안으로 급히 김일성을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기광서씨의 논문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1945년 9월 19일 입북한 김일성이 처음맡은지위는 소 군정 평양지구 민경사령부 부사령관(대위)에 불과했으며 같은해 10월 13일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이 세워질 당시에도 김이 책임 비서를 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45년말에 작성된'슈킨 소련군 총정치국장 보고서'에서도 한반도의 지도자로 조만식, 박헌영 등을 꼽으면서 특히조만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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