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을 무렵, 한 남학생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내 연구실을찾아 왔다. 목발을 짚고 땀을 흘리며 4층 내 방까지 찾아 온 그가 환자였음을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고3때 백혈병 수술을 받았고, 작년에 대학생이 되었지만 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휴학을 했다.그러나 대학생이 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기에 부모는 그가 졸업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올 봄에복학시켰다. 그러나 그의 병세는 매일 학교에 올 수 없을만큼 심했다. 그래서 그가 학교에 오는날에는 어머니가 대신 책가방을 들고 포항에서 하양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것이다.그래도 그는 시험을 걱정했었던지 출석과 관계없이 리포트로 학점을 받을 수 없겠느냐고 내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 왔었다. 나는 그후 학과장 선생님과 의논하고, 출석에 신경쓰지 말고 또 절대로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후 모자는 내 강의시간에 교실 맨 뒷줄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내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하기를 단 두번!
마침 나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많은 신자, 주교, 사제들이 사후(死後) 그들의 장기를 기증하고, 화장하여 무덤조차 남겨놓지 않겠다고 서명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2년전부터 이와 비슷한 뜻을가진 이 학생은 부모님의 허락을 청했으나 비신자인 아버지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어머니, 여동생과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던 중 그는 내 강의를 들으며 뜻을 굳혔고 드디어는 아버지의허락을 받았다. 유언에 서명한지 꼭 두달만인 5월17일, 그는 가벼운 몸과 맘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비록 짧았지만 그는 참으로 값진 생을 살았다. 우리 모두 죽으면 모든 걸 버리고 떠날텐데 가진것조차 나눌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한없는 욕심으로 나만의 삶을 살고자 바둥거리는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어떻게 죽었느냐?'고 묻는 것은 곧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음을 말해주고 있다.
〈수녀·대구효성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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