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

"이렇게 살자구요" 나는 원두커피를 수동식 분쇄기로 갈아서 마신다. 분쇄기에 커피콩 몇알을 넣어 손잡이를 돌리면끼리릭 끼리릭하는 소리가 상쾌하고 또 그 소리에 묻어나오는 향에서 나는 이미 반쯤은 커피 마신 상태에 빠져든다.

물론 내방에 온 손님에게도 이런식으로 커피를 대접한다. 더러 왜 맛있고 간편한 인스턴트를 안마시느냐, 왜 편리한 자동식 놔두고 수동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한잔의 커피쯤은손의 정직한 수고로써 마시고 싶어 그런다'고 답해준다.

---삶의 주인이고 싶어

정말 나는 자동전자제품을 경원시하는 고전주의자도 아니고 특별히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자연주의자도 아니며 지나간 시절의 문화에 대한 낭만적 향수로 휘청거리는 복고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주의자가 아니다.

그냥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야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내손은 그래서 늘 이것을 만지고 그것을 뒤집고 저것을 옮기느라 바쁘다. 책을 읽을때에도 내손은 자판기를 더듬거나 필기구를 만지고 있다. 심지어 강의할때조차 내 손의 제스처는 유별나게 요란스럽다.우리집에 있는 기계들이나 전자제품들은 대개 사용하는 데에 손이 많이 드는, 말하자면 낡고 유행에 뒤진 구닥다리들이다. 텔레비전을 켜려면 손으로 놉을 잡아 뽑아야하고 채널을 바꾸려면 로타리식 손잡이를 좌우로 돌려야 한다. 형광등은 줄을 두번 당겨야 켜지거나 꺼지게 되어있으며수도꼭지는 일자식 손잡이를 돌려서 틀거나 잠그게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제품들의 제작추세는 손의 기능을 그저 리모컨이나 제대로 누를수 있는 수준으로 퇴화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결국 백화점 또는 전자상가에서 팔리는 상품들은예외없이 우리의 손을 점점 호주머니 깊숙히 집어넣거나 몸통 가까이 묶어두려는 것들뿐이다.손을 요란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려는 내 습관, 내 삶의 태도는 분명 이러한 음모에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자유로운 인간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손으로 뭔가 활력에 찬것들을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다.

---편해지는 것은 노예로 전락

그래서 나는 손으로 만들어진 수제품들을 유난히 즐긴다. 그런 것들을 만지면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거기에는 금속성의 날카로움 같은 것이 없고 오래된 시계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배어있다. 특히 손으로 만든 등공예소품같은 것들을 만지노라면 간절하게 느꺼워지는 정서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이 이상 더 편해지기 싫다. 여기서 더 편해진다는 것은 노예로 전락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 믿는다. 헤겔이 저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간단하다. 사람이기계에 의존하다보면 결국 주인의 기계는 노예이면서도 주인의 주인이 되고, 기계의 주인은 주인이면서 노예의 노예가 되고만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며 기계의 노예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우리는 먼저 팔짱부터 풀어야 한다. 호주머니 깊숙이 찔러넣은 손을 꺼내어서 가능하면 허리로부터 멀리 떼어놓고무엇이든 잡고 만지고 옮기고 돌리고 쓰고 접고 붙이고 떼느라 바쁘게 만들어야 한다.〈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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