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투리의 미학

출퇴근 길에 차가 밀리면 가끔 라디오를 틀어놓고 이런저런 방송을 들으면서 신문이나 방송이 주는 정보의 방대함과 그 위력을 새삼 느끼곤 한다. 도심이나 고속도로의 정체나 정보를 알 수 있어서 나보다 더 밀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조바심을 달랠 수도 있고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지난 고생담이나 특별한 사연들을 방송함으로써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고 훈훈한 정을느낄 수 있는 미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의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일상적인 문장을 제시하고 이를 경상도 사투리로 바꾸어 잘 이야기하면 경품을 준다는 방송도 있다. 물론 점점 잊혀져가는 구수한 옛 사투리를 유추해보면서 짜증나는 퇴근길에 가벼운 웃음을 머금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는 각 지역 특유의 억양들은 남아 있으나 심한 사투리들이 상당히 사라졌다. 교통의 발달로 지역간의 교류나 왕래가 빈번해진 탓도 있겠으나 방송 특히 라디오나 TV가널리 보급됨으로 인하여 누구나 아나운서들의 표준말을 귀에 익힌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군대시절 광주국군병원에 근무하면서 전라남도의 수해지역 대민 진료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이뿌리만 남아있어서 잇몸이 붓고 아파 이를 빼달라는 할머니의 말을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주위 아주머니들의 설명을 듣고 진료를 끝낸 적이 있다. 나는 대신 나름대로의 표준말로 발치후의 주의사항들을 설명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눈만 끔뻑거리셨다. 그러나 한 시간쯤 후 군인아저씨들이 더운데 수고한다고 박카스 한병을 군복호주머니에 넣어주셨고 나는 손자들선물이라며 치약샘플을 하나 드린 것으로 나의 조그만 영호남 교류는 끝이 났지만 이렇게 통역까지 필요할 만큼 우리말의 지역간 사투리가 심한 것인가 하고 느꼈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교수가 처음 서울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나니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 것같아서 "기나 안기나?"하고 큰소리로 물으니 학생들이 전부 책상밑으로 기더라는 우스갯소리도있다.

요즈음 들어 잊어버렸던 옛것을 찾고 고유의 우리 것들을 지키려는 움직임들도 많다. 사투리 역시 다듬질하는 방망이 소리마냥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중 하나이지만 방송에서 사투리를 부각시키는 것은 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하자는 운동에 역행하는 것이며, 오히려 잊혀진 순우리말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경북대교수·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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