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킹메이커 유감

"김찬석〈논설위원〉"

대선의 해여서 그런지 차기대통령 선출을 둘러싸고 '킹메이커'란 말이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된다.영어 합성어이면서도 영어문화권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 조어(造語)는 우리만의 독특한 정치문화의 산물이자 정치현실의 일면을 투영하는 거울이란 생각도 든다.

킹메이커-선거를 통한 '최고지도자 만들기의 달인(達人)'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한듯한 이 말은 그러나 어쩐지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이 또다른 권력자를 향해 자기변신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같아 찜찜한 느낌을 갖게도 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킹메이커란 말은 대체로 여권내에서의 각 정파간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주도해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다분히 책략적인 냄새를 풍기는 정치고수(高手)에게 쓰여진다. 게다가지난 6공(共)과 문민정권 창출에 참여한 사람들이 킹메이커임을 자처하면서 국정을 혼란하게 한사례를 또한 적잖이 보아왔기에 우리들이 선뜻 호감을 가질수 없는 그 무엇을 이 말은 함축하고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도 민주시대가 활짝 열렸다는 오늘의 대선(大選)판에서 여전히 이 말이 쓰이고 또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 것은 우리 정치풍토에 어두운 일면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뜻도된다 하겠다. 여기서 우리 한번 역설적으로 차라리 사심없이 국가백년대계만을 생각한 올곧은 킹메이커는 없었을까 생각해 보자. 오랜 중국 역사를 통해 보아도 진정한 의미의 킹메이커는 몇 안되거니와 그중의 하나가 주공(周公) 단(旦)이요 또 하나는 잘 알려진 제갈공명(諸葛公明)이다.주공은 주(周) 무왕의 동생으로 무왕이 사거한후 등극한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섭정으로 7년간보필했다. 단순히 보필한게 아니라 자신의 친동생이자 성왕의 숙부인 관숙과 채숙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주살하면서까지 왕권을 수호했고 조카가 장성하자 왕권을 선뜻 돌려 주었던것이다. 주공의 힘과 권력은 능히 어린 조카를 덮을 수 있었지만 권력을 잡는 것보다 조카를 보호함으로써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려 했었다.

제갈공명의 융중대책(隆中對策) 또한 킹메이커의 경륜이 어떤것인지를 보이는 좋은 예가 아닐는지. 떠돌이 무장에 불과했던 유비(劉備)에게 27세의 청년 사부 공명은 천하3분(分)의 계책으로 천하경영을 설파했고 유비는 그로부터 10년후 촉한의 황제가 됐던 것이다. 내가 여기서 누누이 케케묵은 고사를 길게 인용한것은 킹메이커의 진면목이야말로 10년을 꿰뚫는 제세의 경륜과 사심없는 도덕성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인 것이다.그리고 이처럼 최고의 정치지도자를 옹립하는 킹메이커의 경륜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다고 부연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킹메이커를 자처하는 사람중엔 6공과 문민정권을 거쳐 이번에 또 대통령옹립의 대임을 자청하고나서는 경우도 없지 않거니와 이래서야 될 일이 아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대통령감이다'라고 국민앞에 추천한 두사람중 한명은 감옥에 있고 다른 한사람인 YS 또한 그 치적이 목불인견이고 보면 그 킹메이커가 국민을 오도한 책임은 어디서 물어야 한단 말인가.

과거 모시던 대통령이 만신창이가 되든 말든 또다른 후보를 옹립하느라 합종연횡에 골몰한다면이야말로 시쳇말로 인간성문제라 할 수밖에 없다.

요즘들어 대선캠프 줄서기 분위기가 과거 어느때보다 확산되고 있다 한다.

정치지망생들 사이의 이런 분위기는 '줄만 잘서면 책임질 일은 없되 한건 할 수는 있는', 다시 말해 전임의 대통령은 몰락해도 킹메이커는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무책임한 세태에서 비롯된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높은 경륜에서 정치가 시종해야 된다는 평범한 이치가 새삼 돋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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