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7매일보훈대상 영광의 수상자들

매일신문사와 대구지방보훈청은 '97 매일보훈대상' 수상자로 홍재남씨(66.대구시 중구 남산2동)등6명을 선정하고 20일 오후 2시 대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이 시상식에는 김부기 매일신문 사장, 박상범 국가보훈처장, 문희갑 대구시장, 이의근 경상북도 지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대구지역 상이군경부문-홍재남

31년 경기도 개풍면 묵송리에서 태어난 홍재남씨는 6.25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피란했다가 50년12월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영주, 제천 등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홍씨는 51년 10월 가칠봉전투에서 머리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이듬해 제대하게 된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대구 덕산시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홍씨는 성실한 생활끝에 74년 3월, 남문시장에 점포를 마련하고 83년에는 내집마련의 꿈도 실현했다.

3남2녀의 자녀를 둔 가장이기도 한 홍씨는 60년 8월부터 남산3동 반장직을 맡아 도로정비와 상하수도 개량사업에 노력을 기울이며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했다. 90년 6월에는 상이군인 중구지회 지도원으로 위촉돼 회원상호간 단결과 국가유공자의 위상제고에 기여한 공로로 보훈처장 표창을 3차례나 받았다.

(66.대구시 중구 남산2동 613의 21)

▲대구지역 유족부문-오학술

오학술씨는 49년 부인 백갑년씨와 결혼, 4남1녀를 두고 고향인 달성군 유가면에서 농사를 지으며단란한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69년 32사단에 입대한 장남 영길군이 70년 6월 훈련중 순직하는슬픔을 겪었다. 오씨는 장남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유가면 봉리 마을이동조합을 결성, 초대조합장으로 추대돼 흑자경영을 이룩함으로써 조합을 크게 성장시켰다.

오씨는 또 84년엔 '비산학구노인회'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경로효친사상을 심어주고 투철한 국가관을 심는데 기여했다. 이와 함께 오씨는 89년 4월부터 지금까지 유족회 달성군 지회장을 맡아 어려운 회원들을 돌보고 지회의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기여했다. 오씨는 이같은 성과로93년 4월에는 유족회 경상북도 지부장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73.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봉리 407)

▲ 대구지역 미망인부문-장태복

16세때 시집을 간 장태복씨는 2남1녀를 낳고 6.25전쟁중이던 50년 10월 남편 배해운씨의 전사소식을 들었다. 집안의 2대 독자요, 3남매의 아비였던 남편 배씨의 전사소식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슬퍼할수만 없었던 장씨는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품앗이, 삯바느질, 채소행상 등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하늘도 감동한 탓인지 장씨는 89년 달서구 송현동에 목욕탕을 개업했다.장씨는 집안일에도 전혀 소홀함을 보이지 않아 3년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시아버지의 병수발을 불평 한마디 없이 해냈고 장남 영칠씨를 달서구 의회 의원으로 길러냈다. 88년 4월부터 지금까지미망인회 달서구지회장을 맡으며 충혼탑 정화작업, 국토대청결운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장씨는달서구청장, 대구광역시장 표창도 여러차례 받아 먼저 간 남편의 이름을 더욱 빛냈다.(70.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1942의 1)

▲ 경북지역 상이군경 부문- 황영준

황영준씨는 청년시절 신문을 돌리며 학비를 마련한 효자였고 모범학생이었다. 6.25가 터지자 자원입대, 50년 9월 대구 팔공산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51년 명예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7명의 가족을부양하기 위해 제대비로 받은 돈으로 돼지 2마리를 사 부지런히 키웠다. 남다른 노력으로 자식을사회의 동량으로 키운 황씨는 74년 4명의 전우들과 함께 양돈조합을 결성해 사업을 키워 나갔다.어렵게 생활하며 번 돈을 황씨는 남을 위해 값지게 썼다.

71년 구미시 장천면 선암초등학교에 벽시계와 노트 1천여권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소년.소녀 가장, 저소득 장애자, 환경미화원 등 수십명에게 위문품을 전했다. 81년 선산읍장을 맡게된 황씨는 지역을 위해 헌신적으로 생활하며 국가유공자 자녀들을 돌보는데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64.경북 구미시 선산읍 노상동 121번지)

▲ 경북지역 유족부문-임규영

일제 치하에서 남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던 임규영씨는 결혼 15년만에 논 5천평,밭 2천평을 일구는 중농이 됐다. 농군으로 자리를 잡아 주변 사람들의 귀감이 된 것도 잠시, 해병대에 입대한 넷째 아들 윤배군이 훈련 중 순직하는 아픔을 겪게 됐다. 그러나 시련을 딛고 일어선 임씨는 단순 벼농사로 농촌 현실을 이길 수 없다며 지역사회에 과수재배 붐을 일으켰다.임씨는 또 청과회 회장을 맡으면서 농가당 연간 2천5백만원의 고소득을 올리는데 크게 힘썼다.임씨는 또 유족회 김천시 지회장으로 있으면서 전회원 가구를 일일이 방문, 생활 카드를 만들고생계곤란자에 대해 모금운동도 벌이기도 했다.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을 쏟아 산불조심과 자연보호운동을 전개하고 푸른숲가꾸기에도 숨은 공을 세웠다. 자식농사에도 성공한 임씨는 둘째 아들인배씨를 15대 국회의원으로 보냈다. (71.경북 김천시 농소면 용암리 366)

▲ 경북지역 미망인 부문-우재옥

우재옥씨는 50년 포항지구 전투에서 왼쪽 다리가 절단된 상이용사 김좌진씨와 결혼했다. '불구자와 결혼해선 안된다'던 만류를 뿌리치고 우씨는 평생 남편을 간호하면서 '가시밭길'을 헤쳐 나왔다.

90년 5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우씨는 노점상을 하면서 막막하던 생계를 꾸려나갔고 보훈청의도움을 받아 자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냈다.

홀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을 깊이 느낀 듯 2남2녀의 자식들은 제각기 자기 역할을 하며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졌다. 연말연시가 되면 경로당을 찾아 쓸쓸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명절에 아동복지시설을 찾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억척스런 삶을 엮어나가면서도 가정에서는 다정다감한 어머니로, 상이용사의 아내로서 묵묵하게세상을 헤쳐나가고 있다.

(61.경북 영주시 영주4동 주공아파트 2동 103호)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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